
묵자 미학사상의 실질과 영향에 관한 연구
Abstract
This paper examines the practical utility and practical application of Mozi's aesthetic philosophy from the perspective of the lower classes during China's Warring States Period. Mozi, in his "unprofitable music," believed that the lower classes shouldered the costs associated with musical instrument production, while the upper classes, who did not engage in the production of musical instruments, were merely exploiters. Mozi believed that humans and animals were distinct, and that humans could only survive through their own labor and work. In this sense, Mozi's "unprofitable music" possesses its own positive value. However, it can be seen as originating from the extreme utilitarianism of the ancient petty producer class, and as a denial of aesthetics and art. Slave societies were the first to create great cultures throughout history, and later human cultures were built upon this system. Mozi played a crucial role in sustaining interest in the relationship between beauty and utility. Furthermore, he exerted a significant influence on later generations by exposing and criticizing rulers' pursuit of beauty and their indulgence in extravagance and greed.
Keywords:
Mozi, Aesthetic thought, Unprofitable music, Substance and effectI. 서 론
묵자(기원전 480~420)의 이름은 적(翟)이고 노(魯)나라 사람이다. 본래 수공업 계층 출신으로 각종 생산 기술에 능했다. 통치 계급의 입장에서 보면 ‘천인’에 속했다. 나중에 묵가 학파를 창시하여 각국의 군주들에게 유세를 하러 다녔고, 관직은 송(宋)나라의 대부(大夫)에 이르렀다(Ha, 2018).
현존하는 『묵자』는 묵자와 그의 후학들이 저술한 것인데, 본 연구에서 밝히고자 하는 묵자의 미학사상은 전체 묵가 학파의 사상을 포괄한 것이다.
중국 고대 사회에서 ‘악(樂)’은 음악을 가리키며, 동시에 송시(誦詩), 가무(歌舞)를 포함하는 것으로, 아직 미분화된 고대 예술의 총칭이다. 묵자의 미학 사상은 ‘비악(非樂)’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묵자 미학의 핵심이다. 『묵자』중에 「비악」은 독립적인 한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과(辭過)」, 「삼변(三辨)」, 「비유(非儒)」, 「공맹(公孟)」 등에도 ‘비악’의 사상이 들어 있으며, 묵자의 ‘비악’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주요 근거가 된다. 이 외에도 적지 않은 문헌 속에 묵자의 ‘비악’에 관해 논술한 글들이 있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의 「반질편(反質篇)」, 『여씨춘추』의 「귀인편(貴因篇)」 등이 바로 그것인데, 이 역시 참고한 내용이다.
이른바 ‘비악’이라는 말은, 심미나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부정하고 그 활동의 전개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묵자는 심미 또는 예술 활동은 의식(衣食)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백성의 노고와 재정적 부담이 들기 때문에 백성들의 질곡을 가중시키고, 치국안민에 전혀 보탬이 안 되며, 이익을 도모하고 폐해를 줄이는 데도 이로움이 없기 때문에 어진 사람은 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묵자의 이와 같은 관점은 하층 인민의 이익과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선진 시대에 ‘악’은 통치자가 예치(禮治)를 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 수단임과 동시에, 왕공대인(王公大人)들이 향락을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형식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무거운 재정적 부담을 안겨 주었다(Ha, 2018). 이 점은 중국의 지하 발굴 유물이나 제자백가의 문헌 속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이른바 ‘당금지주(當今之主)’나 ‘왕공대인(公大人)’들이 음악 예술 활동, 즉 연회를 개최하게 되면, 그 규모와 물량은 놀라울 정도였다. 구체적 사례를 살펴보면 보면, 그 일단을 알 수 있다.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사람을 시켜 피리를 불게 하는데, 3백 명이나 되는 악공들이 필요했다. 남곽처사(南郭處士)도 초청을 받아 왕을 위해 피리를 부니, 선왕이 기뻐하여 수백 명분의 녹봉을 주었다(Song, 2018).” 묵자는 통치자들이 이처럼 백성들의 고혈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즐기고 있음을 예리하게 폭로하면서, “윗사람들이 그 쾌락을 싫다 하지 않으니, 아랫사람들은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개탄했다(Jung, 2011).
따라서 묵자 미학사상은 유가 상층민의 미학사상과 달리 하층민의 고통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보아야 하며 이를 통해 전국시대 당시 하층민에게 실질적인 도움과 혜택이 되는 면을 살펴서 미학의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논문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묵자 미학사상에서 나타나는 비악의 실질과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연구 문제로 삼는다.
Ⅱ. 연구 방법
1. 연구 대상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은 첫째, 묵자 미학사상에 나타난 하층민의 질곡과 그를 해소하기 위한 내용을 살펴볼 것이다. 둘째, 묵자 미학사상에서 나타나는 비악의 실질과 끼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을 연구 문제로 삼는다.
2. 연구 방법
『묵자』에 나타난 「비악」편을 중심으로 「사과」, 「삼변」, 「비유」편의 관점과 기타 ‘비악’의 사상이 나타난 ‘악’의 내용과 활용과정을 찾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사치의 견제와 비판의 관점에서 묵자 미학사상의 기본적 내용과 공헌 및 역사적 한계성을 살펴서 이를 해석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2025년 8월부터 참고문헌을 수집·분석하고, 약 6개월 동안 묵자의 ‘비악’에 대한 인식을 추출, 해석하고 분석하여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논문의 시사점과 연구의 제한점, 향후 연구 진행 방향 등을 제시하며 연구를 마무리한다.
Ⅲ. 연구 결과
1. 묵자 ‘비악’의 실질
묵자는 노동에 종사하는 대다수 일반 백성들의 물질생활 문제에 착안하여 여러 측면에서 ‘비악’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선, 그는 음악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는 음악 활동을 하려면 일단 악기가 필요한데, 악기를 제조하는 것 역시 많은 비용이 드는 까닭에, 필연적으로 일반 백성들의 재화를 착취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옛적에 성황들 역시 백성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거두어 배나 수레를 만든 적이 있다. ⋯⋯. 그런 까닭에 백성들은 많은 재물을 내어 나라에 바치고도 감히 그 일에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으니, 이는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이 오히려 백성들의 이익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악기의 경우에도 백성들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또한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니, 나는 감히 그르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Jung, 2011).
본문의 내용은 사실과 부합한다.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악기는, 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무가치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묵자는 배와 수레의 경우는 백성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용 지불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점에서도 묵자가 악기 제작을 반대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악기가 제작된 후에는 지배층을 위해 연주를 하게 되는데, 이 역시 매우 무거운 부담이다. 왜냐하면, 생산능력이 있는 건장한 남녀가 이러한 하찮은 노역을 하게 되거나 물질 생산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쇠북을 울리는 데는 반드시 젊은이가 필요한 것이다. ⋯⋯. 젊은이들에게 그러한 일을 시키게 되면 그들이 해야 할 밭갈이나 씨 뿌리기 등의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아녀자들에게 그 일을 시키면 아녀자들이 해야 할 길쌈질 등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오늘날 임금이나 높은 벼슬아치들인 지배층은 오직 음악에만 열중하여, 백성들이 먹고 입는 데 필요한 재물들을 빼앗아 악기를 두들기는 데 사용하는 일이 이처럼 많다(Lee, 2017).
이 외에도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용모와 자태를 지녀야만 했다. 그러한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게 만들고, 또 그들을 아름답게 치장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제(齊)나라의 강공(康公)은 ‘만(萬)’이라는 노래와 춤을 만들어,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에게 굵은 베옷을 못 입게 하고, 거친 음식을 못 먹게 했다(Lee, 2017).” “음식이 좋지 않으면 생김새와 얼굴빛이 볼 만하지 않고, 의복이 아름답지 않으면 몸매와 동태(動態)가 추하여 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쌀밥에 고기를 먹였고, 의복은 반드시 수로 무늬를 놓은 좋은 것만을 입혔다(Jung, 2011).”고 했다. 이상과 같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물질 생산을 저해하며, 인력과 물력을 소모시킬 따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기를 연주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감상 시간에는 다른 활동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군자가 나라를 다스리거나 필부의 생산 종사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된다.
지금 큰 종과 북, 거문고와 비파, 피리와 생황 등의 악기가 모두 준비되어 있는데,⋯⋯. 상류층의 사람들과 함께 듣는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스려야 할 일을 포기해야 되며, 하류층의 사람들과 함께 듣는다면 그 사람들은 자신이 종사해야 할 일을 포기해야 한다. ⋯⋯. 이런 까닭에 묵자는 음악을 하는 것은 그르다고 한 것이다(Lee, 2017).
이상으로 묵자가 악기의 제조, 연주, 감상의 세 가지 측면에서 ‘비악’의 이유를 논술한 것을 살펴보았다. 그가 제시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음악은 오직 백성들이 먹고 입는 데 써야 할 재물을 약탈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묵자는 인간과 동물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지 자연계가 베풀어 주는 혜택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인간 스스로 노동과 작업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자기 힘에 의해 일하는 사람은 살고, 자기 힘으로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살지 못한다. 군자가 정치에 힘쓰지 않으면, 곧 정치와 법률이 어지러워지고, 일반 백성들이 생업에 힘쓰지 않으면 재화가 부족하게 된다(Hwang, 2019).”라는 것이다. 「비악·상」에서 묵자는, 사람은 금수와 다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연에 순응하여 살아갈 수 없으며, 반드시 생산 노동을 해야만 생존에 필요한 의식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군자가 정치에 힘써야만 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 바, 일반 백성들의 정력과 시간을 음악을 준비하고 연주하는 데 쓰게 되면, 백성들의 삼환(三患:衣·食·息)을 해결할 수 없게 되며, 끝내는 “국가를 어지럽히고 사직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Jung, 2011).
묵자는 이렇듯 당시 전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재난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인자(仁者)는 자신의 정력과 시간을 전란을 방지하고 폐해를 줄이며 이익을 도모하는 데 사용해야 하며, 음악을 연주하는 등 환락을 즐기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묵자는 ‘비악’을 통해 사회의 심미, 예술 활동 영역에서 현실 생활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부귀의 대립이나 착취자와 피착취자들 간의 첨예한 모순 등을 폭로하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묵자의 ‘비악’은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다른 한편, 묵자의 ‘비악’은 고대 소생산자 계층의 극단적인 공리주의에서 출발하여, 심미와 예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비악·상」편에서 이에 대해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묵자는 말했다. “인자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천하의 이익을 도모하고, 천하의 폐해를 제거하도록 힘써 구하는 것이니, 장차 그것으로써 천하에 법을 세워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일이면 하고, 사람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면 하지 않는다. 무릇 어진 사람이 천하를 위해 일을 도모하는 것은 눈에 아름다운 것, 귀에 즐거운 소리, 입에 맞는 맛, 자기 몸의 안락 등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 백성들이 입고 먹는 데 필요한 재물을 빼앗는 일은 어진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Hwang, 2019).” 묵자는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 눈에 아름다운 문채, 입에 맞는 음식, 몸을 편안하게 하는 장소들이 가치있고 백성에게 이익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묵자는, “음악을 하는 것은 그르다.”고 하는 것이다(Jung, 2011).
본문에서는 묵자의 ‘비악’과 일체의 심미 활동을 반대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의 미학사상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묵자는 미의 존재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고, 음(音), 색(色), 감(甘), 미(美)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며, 필요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묵자는 생황을 잘 불었으며, 음악에 대해 조예가 있었다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Hwang, 2019). 묵자는 논리학의 개념을 논하면서, 미(美)와 추(醜)는 객관적으로 구별되는 존재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말을 취하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했다(Lee, 2017). 「경설·하(經說·下)」편에서 말하기를, “문채가 아름다운 것이면 그것을 취하고, 문채가 아름답지 않은 것이면 취하지 않는다(Sunwoo, 2019).”라고 했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구도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자는 반드시 일반 백성들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묵자의 견해는, 당시의 일반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 시대에 각국의 제후들은 화씨지벽(和氏之璧), 수후지주(隋侯之珠), 구정(九鼎) 등을 나라의 보물로 삼고, 자신들의 부귀와 존엄을 상징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것을 얻으려고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Han, 2019). 그것들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거나 인구를 늘리거나, 또 형벌을 잘 다스려 사직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들은 아무런 효용 가치도 없는 것이다.
묵자가 말했다. “⋯⋯. 그러나 화씨의 벽과 수임금의 진주, 구정 등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될 수 없으니, 이것들은 천하의 훌륭한 보물이 아니다(Han, 2019).”
묵자가 말하는 ‘이인(利人)’이란, 사람들에게 물질적 보탬이 될 수 있고, 실제적 효용 가치가 있으며, 사람들이 실제 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의미한다(Jung, 2011). 미를 감상하는 일은 실제적인 효용 가치가 없기 때문에 그 안에 포함될 수가 없다. 게다가 묵자의 경우, 인간들의 의식주를 비롯한 일체의 생활에 필요한 것은 항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과도하게 사치스럽거나 쓸데없이 미적으로 치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있어서 더욱 높은 수준을 추구하거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생각은 결코 옳은 것이 아니었다.
『묵자』에서는, 고대의 궁실, 의복, 음식, 배, 수레 등을 당시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글이 나온다. 그는 옛날에, “성왕은 궁실을 지어도 살기에 편하게 할 뿐, 보고 즐기기 위해 짓지 않았으며, 의복을 지으면서도 몸에 맞게 하고 피부를 보호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지, 아름답게 꾸며서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었다.”고 하였다(Lee, 2017).
이처럼 옛 성왕들은 의식주를 비롯한 인간들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실용적이고 편리한 것을 표준으로 삼아 헛되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거나, 입에 맞는 음식만을 추구하거나, 자기의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들의 물질 생활은 “비용은 적게 하고 이익은 많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재력을 낭비하여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Hwang, 2019).
『묵자』에 담긴 의분(義憤)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엥겔스가 지적한 바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의분만 가지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류 문화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고대 생산력의 발전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심미나 예술 활동의 발전은 일부 극소수 통치 계급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대다수 일반 대중의 노동의 결과, 즉 의식의 재화를 약탈한 대가였다. 중국의 상(商)·주(周) 노예제 사회나, 고대 그리스의 노예제 사회의 예술 역시 모두 이렇게 창조된 것이며, 또 이렇게 해야만 창조될 수 있는 것이었다(Kim, 1984). 만약에 묵자가 말한 것처럼 통치 계급이 일반 대중의 재물을 중시하여 심미 활동과 예술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물론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 사회는 아마도 매우 저급한 문화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과학이나 예술상의 창조 역시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노예주가 가혹하게 대다수 일반 대중의 먹고 입을 재물을 약탈하고, 그들을 소와 말보다도 못하게 취급한다는 점에서 보면, 노예제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고 마땅히 저주해야 할 제도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를 대가로 하여 노예제 사회는 역사상 제일 먼저 훌륭한 문화를 창조해 냈으며, 후대 인류 문화의 발전은 이 제도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Jung, 2011).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엥겔스는, “고대의 노예제가 없었다면, 지금의 사회주의도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Yang, 2018). 물론, 역사 진보의 이러한 모순성에 대하여 묵자가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외에도 묵자는, 일반 백성들은 당연히 매우 간소한 생활을 영위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심미나 예술 활동은 해서도 안 되고, 아예 필요조차 없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편협한 소생산자적인 관점은 역사 발전의 측면에서 볼 때, 결코 일반 대중들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묵자가 주관적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의 이런 관점은 실제적으로 인간에 대한 천시이자 일반 대중들을 천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좋은 증거이다. 그는 일반 대중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빈곤 속에서 살면서도 전혀 개선을 시도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묵자의 사상은 매우 편협되고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정상적인 건강한 노동자들은 묵자가 말한 것처럼 일체의 심미·예술 활동을 절대로 배척하지 않는다. 『시경』에 전해 오는 수많은 작품이나, 태고부터 전해 오는 아름다운 신화나 전설, 그리고 석기 시대부터 지속되어 온 경탄할 만한 도구나 기구 역시 노동자들의 미적 창조라고 아니 할 수 없다. 수백 년 동안 일반 대중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지향과 추구를 상실한 적이 없었으며, 묵자가 말한 것처럼 단지 생리적 욕구 충족에 만족하는 동물적인 삶을 영위하지는 않았다.
인간 생활이 동물 생활과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은, 바로 인간들은 의식적, 목적적으로 세계를 개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Jung, 2011).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은 단순히 동물처럼 생리적 욕망에 만족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이를 초월하여 미에 대한 추구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추구는 비록 직접적으로 실용적인 공리성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고상한 정감을 배양하고 지혜와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래서 이처럼 미의 추구 속에서 발전되어 온 인간은, 생산 과정을 통해 더욱더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고, 이로부터 더욱 훌륭하게 자신의 물질적 수요를 만족시킬 수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묵자가 말한 것처럼 심미와 예술 활동을 부정하고, 오로지 최소한의 동물적인 생리 욕구만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인간은, 영원히 조악하고 비천하며 우매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Hwang, 2019). 고대 소생산자의 입장에서 역사의식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던 묵자의 경우, 이런 점은 인식할 수 없었다. 이로 보건대, 묵자가 ‘비악’을 만민의 이로움으로 본 것은, 일면 통치자에 대한 비판과 폭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반면, 근본적으로 인간들의 자기 발전 욕구에 위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묵자는 일반 대중들에게 고행주의, 금욕주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묵자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이 인도를 행하고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 점은 분명히 반역사적이며 반민족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묵자 미학은 유가 미학의 대립물로 생겨난 것이다. 유가와 묵가는 고대에 ‘현학(顯學)’이라고 병칭되었는데, 양 학파는 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Lee, 2017). 유가는 심미와 예술 활동의 사회 작용을 적극적으로 긍정했는데, 묵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단지 망국에 이르는 길일 뿐 백해무익한 것이었다. 묵가는 ‘절용(節用)’이라는 기본 원칙에서 출발하여 유가가 주장하고 있는 후장(厚葬)·구상(久喪), 번문(繁文)·욕절(縟節), 예악(禮樂)·의식(儀式) 등에 반대했다. 그리고 “유가들은 예와 음악을 번다(煩多)하게 꾸며 내어 사람을 음탕하게 만들고, 상(喪)을 오랫동안 하여 거짓으로 슬픈 척하며, 어버이를 속인다(Lee, 2017).”고 비난했으며, 직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공격하였다. “공 아무개는 겉모양을 번다하게 꾸며 세상을 미혹시키고, 음악과 춤으로써 학생들을 불러모으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예의를 번거롭게 하여 본보기를 보이며, 걸음걸이의 자세까지 애써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한다.⋯⋯ 그들은 사악한 방술을 꾸며 내어 세상 임금들의 정신을 흐려 놓고, 음악을 거창하게 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의 마음을 음탕하게 만드니, 그들의 도는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없으며, 그들의 학문은 일반 백성들을 가르쳐 인도할 만한 것이 아니다(Hwang, 2019).”
이 밖에도 묵자는 공자가 제창한 ‘시교(詩敎)’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비판을 가하고 있다. “때로 상중이 아닌 때에는, 시를 암송하고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춘다. 만일 그대의 말대로 한다면, 군자는 어느 세월에 나라를 다스리고, 일반 백성들은 어느 세월에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는가(Jung, 2011).”
「공맹」편에서는 유가의 도가 나라를 망치는 이유 네 가지를 들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춤추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이를 익히는 것이다. 묵자가 이처럼 유가를 비판하는 것은, 나름대로 유가가 지니고 있는 약점을 예리하게 포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여기서 심미와 예술 활동은 천하의 큰 해로움이기 때문에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결코 올바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면 묵가는 어떻게 해서 이처럼 유가와 서로 대립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을까? 그 근본 원인은, 유가와 묵가가 인간과 인간의 생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서로 다른 계급의 입장과 역사의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Hwang, 2019). 공자는 “어진 이는 사람들을 사랑한다(仁者愛人).”고 주장하고(Jang, 2024), 묵자 역시 “차별없이 사랑하라(Jung, 2011).”거나,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남을 사랑하라(愛人兼若愛其身)(Jang, 2024).”라고 주장하여, 모두 인도주의 정신에 충실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말하는 ‘사람’은 그 함의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공자가 말한 ‘인’은 상층 노예주 집단으로서 착취자에 속한다. 그들은 은(殷), 주(周) 이래로 여러 가지 문화유산을 계승하고, 장기간에 걸친 문화 교육을 받아 물질 생활면이나 정신 생활면에서 모두 나름대로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 생활에 있어서 심미와 예술 활동의 의의나 작용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공자는 인간이 진정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식욕, 성욕 등의 동물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 이외에도, 스스로를 예와 음악으로 순화시키고 다스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적으로 저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바탕이 문채를 압도하면 야만인과 다를 바 없다(Jang, 2025).”고 역설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묵자가 말하고 있는 ‘인’은 일반적으로 하층에 속하는 노동 계급(노예제 사회 내에 수공업자나 소생산자)을 의미한다. 그들은 대개 피착취자들로서 자신들의 노동과 수고를 토대로 전체 노예제 사회의 문화를 이룩하는 실제 담당자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물질생활이나 정신생활 면에서 발전할 가능성을 상실한 채, 인간이라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과는 멀리 떨어져 저급한 문화적 풍토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다.
묵자는 일찍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세 가지 커다란 우환이 있다고 했다. “배고픈 사람이 먹을 것을 얻지 못하고, 추운 사람이 옷을 얻지 못하며, 노동하는 사람이 휴식을 얻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Lee, 2017),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무런 문화적 소양도 없이, 그저 기아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는 일 뿐인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조건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묵자의 입장에서 미는 완전히 쓸데없는 사치일 뿐만 아니라, 생존을 쟁취하는 데 해가 되는 것이다.
묵자가 예악을 제창한 유가를 비판한 것은, 결국 고대에서 생활이나 문화적으로 비참하고 우매한 상태에 처해 있는 소생산자들을 대변해서, 이미 고도의 문화적 소양을 갖추고 있는 노예주 귀족들을 비판, 항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런 비판과 항거는 일반 백성들을 고난으로 몰고 가는 착취 제도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이고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묵자는 통치 계급이 심미나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일반 대중들의 의식에 필요한 재물을 약탈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재차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 안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진리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예술론」에서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의 무료하고, 때로는 유해하기조차 한 예술 활동을 즐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재력과 인력을 소모하며, 또 얼마나 많은 낭비를 해 왔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폭로한 바 있다(Cho, 2019).
그러나 묵자가 통치 계급의 심미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백성들의 의식에 필요한 재물을 약탈하는 것과 같다는 이유로 완전히 부정한 것은, 인류로 하여금 원시의 몽매하고 저급한 상태로 되돌아갈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본다면, 유가 미학에서 ‘악’의 의의를 긍정한 것은 정확한 것이자 또한 진보적인 것이며, 묵가 미학에서 ‘비악’을 주장한 것은 낙후, 도태적인 것으로 반동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2. 묵자 미학의 영향
묵자가 제출한 ‘비악’의 견해에 대해 당시 전국 시대의 다른 학파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았다. 유가 학파에 속하는 순자는 묵자의 견해에 대해 강력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묵자를 일컬어, “쓰임에 가리워져 문식을 알지 못한다.”고 비난했다(Hwang, 2019). 그리고 유가의 입장에서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 도가 학파의 노자와 장자는 미와 예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동기와 출발점은 묵자의 ‘비악’과는 완전히 달랐다. 노자와 장자는 묵자처럼 편협한 공리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공리주의를 반대했으며, 초공리적인 태도로 생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Jo, 2009). 뒤에 장자(莊子)의 초공리적인 태도는 실제로는 일종의 심미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장자가 말하는 ‘무용(無用)’의 사물은 ‘유용(有用)’한 것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대용(大用)’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죽어도 상복을 입지 않으며, 오동나무로 세치의 관을 만들고 다시 외관을 만들지 않는다.”는 묵가의 고행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Jo, 2009).
『장자(莊子)』의 「천하(天下)」편에서 묵자를 비판하여, “그들의 학설은 ‘애인(愛人)’의 표현도 아니며 ‘애기(愛己)’도 아닌 것으로, 천하의 마음에 반(反)하는 것이다(Lee, 2019).”라고 한 것은 바로 그 뜻이다. 노자와 장자가 미와 예술을 부정한 것은, 결코 미와 예술이 쓸데없는 것이어서 옷을 해 입거나 음식을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미와 예술의 추구가 이미 인간의 생명 발전에 해가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이를 막아 보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부정론은 실질적으로 미와 예술에 대해 근본적인 부정을 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심미와 예술 영역에서 인간이 소외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일 따름이다.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 중에서 오로지 법가만이 묵자에 대해 비교적 동조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는 법가 역시 공리주의자들로서 공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Hwang, 2017). 그러나 법가의 공리주의는, 역사적으로 후기 노예제로 변화하는 시기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노예주의 공리주의로 나갔다(Hwang, 2017). 이는 묵가가 소생산자의 공리주의로 나간 것과 구별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공리주의는 묵자의 것보다 훨씬 개화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공리주의는 단순히 인간의 의식(衣食)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더 나아가 노예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천하의 부, 그리고 천자(天子)의 통치력 강화에 관한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Hwang, 2017). 그들은 비록 공리주의 관점에서 미와 예술을 보았지만, 그렇다고 묵자처럼 미와 예술의 완전 폐지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미와 예술은 반드시 노예주가 통치력을 강화시키는데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공리주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을 따름인 것이다(Hwang, 2017). 그뿐만 아니라, 법가는 묵가와는 달리, 미와 예술을 통치 계급이 마땅히 향유해야 할 것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따라서, 묵가의 고행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국 시대 이후 묵가는 점차 쇠미(衰微)해져 갔다. 서한(西漢)의 효제(孝帝), 무제(武帝) 때에도 묵가의 잔여 인물들이 남아 있었으나, 동한(東漢)에 이르러 마침내 사라져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Hong, 2001).
이제 ‘비악’이라는 말조차 더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않았다. 그러나 묵가의 미학사상이 중국 미학의 발전 과정 가운데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들은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으며,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Hong, 2001). 묵가의 공리는 백성의 노고와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치국안민과 개인의 이익이 되는 것으로 판단했으며, 어진 사람은 공리를 행한다고 생각했다. 묵가의 미학은 공리를 바탕으로 한 관점이었다. 중국 미학사에 있어서 미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각기 나름대로 유기적인 역사 과정 속에서 점차 발전되어 왔다. 그중에서 가장 명확하게 미와 공리의 관계를 문제 제기한 학파가 바로 묵가이다. 이 외에도 묵가는 통치자들이 미를 추구하고 사치와 과욕을 일삼는 것을 폭로, 비판함으로써 후세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고대 그리스의 미학과 비교해 보더라도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한 묵가의 견해는 부동의 특질을 지니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미학에서, 미는 유용한 것이 아니며, 유용한 것은 미가 아닌 것이라고 보고 있다(Kim, 1984). 그러므로 묵가의 미학은 다르다. 우선, 묵가는 미를 무용한 것으로 보고 이로부터 미를 부정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한 묵가의 고찰은 실제로 인류 생활 가운데 아무런 쓸데없는 미에 존재의 의의와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심미의 사회 작용이나 사회 공능(功能)에 대한 고찰이라고 할 수 있다.
Ⅳ. 결 론
노예를 소유하고 충분히 부려 먹을 수 있는 고대 그리스의 노예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름다운 것과 유용한 것 사이에 어떤 모순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유용한 것은 동시에 아름다운 것일 수 있고, 당연히 아름다워야만 한다. 그러나 묵자가 대변하는 중국 고대의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소생산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름다운 것과 유용한 것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한 묵자의 견해는 고대 그리스의 미학 수준보다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계급 사회 내의 미와 공리의 모순을 폭로하고, 통치자들의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묵가의 미학 사상은 무시만 할 수 없는 의의를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묵자가 하층민의 입장에서 착취와 홀대에 대해항거하고 비판하는 개혁적인 사상은 중국 미학의 발전 과정 가운데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들은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후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지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미학사에 있어서 미의 본질에 관한 문제는, 각기 나름대로 유기적인 역사 과정 속에서 점차 발전되어 왔다. 그중에서 명확하게 미와 공리의 관계를 문제 제기한 학파가 바로 묵가이다. 이 외에도 묵가는 유가 통치자들이 미를 추구하고 사치와 일삼는 것을 폭로, 비판함으로써 후세에 많은 정치·경제, 미학사상에 영향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본 논문은 『묵자』와 ‘비악’에 대한 관련 문헌을 고찰함으로써 묵가의 미학사상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미학이 미와 공리의 관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역사적인 인류의 발달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판단되나, 인간의 자기 발전 욕구를 경시한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하지만 묵가 미학사상을 통해서 유가 상층민들의 무절제한 사치와 하층민에 대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을 밝힌 것은 이 논문의 의의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묵가의 미학사상은 당대에 그쳤다고 판단할지 모르나 그 흔적은 계속 남아 긍정적인 역할도 하였다. 나아가 사회 개혁이나 문화적 가치의 생성·발전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정된 문헌으로 묵가 미학사상을 판단한다는 점은 이 논문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서 묵가 미학사상의 지평을 넓히고 분명한 의의를 확립하는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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