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와 교사소진의 관계에 대한 다학문적 탐색
Abstract
This study investigates some relationship between fatigue society by Han and teacher exhaustion by multidisciplinary approaches of philosophy, (educational) psychology, and (educational) sociology/administration.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Han insists that the inhabitants in the achievement driven society are exhausted through the limites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but his claims need some concrete explanation and committed the fallacy of generalization. (Educational) Psychological researches make up for Han’s weak points in that they explained that teacher exhaustion has arisen from the complex interrelation of the characteristics of teachers’ jobs, their demographic and innate characteristics, and school organization and school culture. (Educational) Sociological and administrative researches make up for Han’s weak points in that they explained that teacher exhaustion has arisen from the fall of their authorities, their increased tasks and its changing circumstance, the increase of their accountability and its audit system, the ambiguity and the uncertainty in the pursuit of their duties by the combination of the neo-liberalism, hierarchical bureaucratic system, and nationalist ideas.
Keywords:
Fatigue society, Teacher exhaustion, Multidisciplinary approaches, Achievement driven societyⅠ. 서 론
2010년 가을 독일에서 출간된 ‘피로사회’라는 책자가 2012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저자인 한병철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이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철학책이 이러한 호응을 얻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Han, 2012)이라고 적었다. 국내에서도 피로사회가 출간된 이후 인쇄를 거듭하였고 수많은 독자가 생겨났다. 피로사회에 대한 서평은 물론이고 이와 관련된 연구들도 꽤 이루어진 편이다.
학술적인 면에서 이 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Kim, 2012; Sung, 2017)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Kang(2017)의 말대로 피로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한국인은 병적으로 성과에 집착하고 그 때문에 피곤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한병철의 주장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늘날 우리는 성과중심의 사회에 살고 있으며, 성과를 내기 위한 압박감 속에서 과잉 활동(노동)을 하게 되며, 이러한 활동 과잉으로 소진이 일어나고 마지막에는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 사회는 성과를 내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짜내어 피로에 젖은 사람들이 사는 우울한 사회라는 것이다.
피로사회의 역자인 Kim(2012)은 오늘날 한국의 학교사회가 이러한 성과를 강조하는 사태 속에서 활동 과잉과 그로 인한 소진이 일어나는 곳으로 보았다. Han & Yoo(2013)도 학교를 성과사회로 보았다. 탈진과 우울증을 초래하는 ‘성과를 향한 압박’이 강조되는 대표적인 기관이 ‘학교’로, 교장도, 교감도, 교사도, 학생도, 학부모도 피로하며, 누구 하나 소진되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하였다.
여기서는 한국의 학교사회가 어떻게 피로사회가 되었는가 그리고 교사는 그 속에서 어떻게 소진을 겪게 되는가를 살피는데 관심이 있다. 이를 위하여 먼저 한병철이 제시한 성과 중심의 피로사회의 성격을 자세히 규명하고, 주장에 문제가 없는지를 검토하려고 한다. 한병철은 우리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났다고 보는데,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도 따져본다.
다음으로 한병철의 주장을 확대하면, 성과중심의 사회는 교사소진을 가져오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Kim(2012), Han과 Yoo(2013), Joo(2017) 등도 이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교사소진에 대해서는 (교육)심리학적 관점에서 무수히 많은 연구(Khu & Kim, 2014; Kim, Yoo, Lee. & Cho, 2016; Kim, 2017; Park & Jung, 2018; Suh, 2017; Suh, 2017; Lee, Cho, & Kyon, 2017; Lee, 2016; Cho, Lee, & Lee, 2014; Choi, 2013, 2014, 2017)가 이루어졌다. 국내외에서 축적된 교사소진에 대한 많은 연구물을 바탕으로 성과중심 사회가 교사소진과 어떠한 관계 에 있는가를 검토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성과중심 사회의 성격과 폐해에 대해서는 철학 영역과 함께 신자유주의와 공공관리론의 이름으로 (교육)사회학이나 행정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Kang, 2012; Kwyon, 2015; Kim, 2012; Park, 2015; Park, 2018; Suk, 2015; Son, 2012; Shin, Lee, & Jung, 2013)가 이루어졌다. 한병철이 제시하는 성과사회에서 긍정성 과잉으로 소진되는 인간상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학이나 행정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토대로 교사소진의 이유를 찾고, 한병철의 피로사회의 한계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 연구는 성과중심 사회 속에서의 교사소진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 및 행정학 등의 연구 관점을 통합하는 다학문적인 접근을 취한다. 성과사회와 교사소진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학문적 관점이나 개별 학문영역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학문 영역이 조금만 달라져도 대화가 없거나 거의 불가능한 한국의 학문적 풍토에서 다학문적 접근을 통하여 개별 학문의 접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그들 연구의 성과를 활용하여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Ⅱ. 피로사회의 성격과 문제점
한병철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성과사회, 활동사회, 도핑사회, 존재결핍사회, 고립사회, 자기착취사회, 피로사회로 규정한다. 그는 21세기의 사회는 더 이상 규율사회가 아니며 성과사회라고 말한다. 규율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한다’는 금지, 명령, 법률에 바탕을 둔 부정성의 사회인데 반하여,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 ‘예스 위 캔’의 긍정성의 사회로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강조되는 사회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사회의 주민은 복종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처럼 활동한다. “성과주체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로우며 그것에 의해 노동을 강요당하지도 착취의 희생자도 되지 않는다. 성과주체는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Han, 2012). 그는 이러한 주장을 자신의 책에서 여러 번 되풀이한다.
후기 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복종, 법, 의무 이행이 아니라 자유 쾌락 선호가 그의 원칙이다. 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 그는 타자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는 자기 자신의 경영자가 되어야 한다(Han, 2012)
성과사회는 성과를 내기 위하여 ‘활동’을 강조하기 때문에 활동사회가 된다. 성과사회에서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강조되는 것은 성과(목표) 달성을 위한 주체적 활동과 그것을 추동하는 동기유발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활동사회의 주민은 증가한 업무 부담과 신속한 처리의 요구로 멀티태스킹을 수행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멀티태스킹은 사냥을 하면서 살았던 수렵시대로 우리의 삶을 되돌린다. 멀티태스킹이 주어진 시간 내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지각은 파편화되고 분산되며, 분주한 활동만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Han, 2012). 한병철은 활동을 강조하는 사회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활동적인 사람들은 보통 고차적 활동을 하는 법이 없다... 돌이 구르듯이 활동적인 사람들도 기계적인 어리석음에 걸맞게 굴러간다(Han, 2012).
성과사회는 내적 논리에 따라 도핑사회로 발전한다. 도핑(doping)은 운동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하여 심장 흥분제나 근육 강화제 따위의 약물을 먹거나 주사하는 일로 부정행위로 금지된다(네이버 사전). 한병철이 말하는 도핑사회란 마치 운동선수가 약물을 먹거나 주사를 찔러가며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짜내는 것처럼, 성과주체가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하여 자신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붓는 사회를 가리킨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 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빠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Han, 2012).
성과사회는 존재 결핍의 사회이다. 오늘날 세계 어디에도 지속과 불변을 약속하는 것은 없다. 오늘날 진행 중인 삶의 가속화 역시 이러한 존재의 결핍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존재의 결핍 앞에서 초조와 불안이 생겨난다. 세계는 전반적으로 탈서사화 되었으며 이로 인해 허무의 감정은 더욱 강화된다. 탈서사화는 삶을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든다(Han, 2012).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생명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일만 남았다. 후기 근대의 성과사회가 우리 모두를 발가벗은 생명으로 환원시켜 호모 리베르를 자처하는 성과 주체는 호모 사케르임이 밝혀진다(Han, 2012)
성과사회는 고립사회이다. 사람들은 활동사회 속에서 단순하고 분주한 활동을 하는 가운데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소실되고, 귀 기울여 듣는 자의 공동체도 사라진다. 한병철이 이 시대를 고립사회로 부른 것은 성과를 내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과잉 활동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타자를 향한 존재의 두께를 더욱 줄여 놓으며, 과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후기 근대의 성과주의는 강력한 유대의 능력을 잃어버린다(Han, 2012)고 한다.
성과사회는 자기착취사회이다. 성과주의적 후기산업사회는 생산의 증대를 위해 유연한 개인을 필요로 한다. 어떤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고 어떤 역할이나 기능도 수행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러한 무형성 내지 유연성은 높은 경제적 효율을 가능하게 한다. 타자나 신이 주는 보상이 없어지거나 약화되는 보상구조에 이상이 생기면서 성과주체는 점점 더 많은 성과를 올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빠진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으로,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
성과사회는 피로사회이다. 인간 전체가 하나의 성과기계가 되어 원활한 작동으로 최대의 성과를 산출할 것을 요구하는 성과사회에서는 극단적 피로와 탈진상태가 일어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이다. 피로는 폭력이며,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한다. 성과사회는 사람들을 소진시킨다. 소진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힘이 빠져 나가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학적 결과이다(Han, 2012). 한병철은 소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나치 강제수용소의 무젤만과 유사한 증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무젤만은 탈진하여 완전히 무력해진 수감자들로서, 극심한 우울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빠져 심지어 육체적인 추위와 감독관의 명령조차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Han, 2012).
한병철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변모를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불렀다. 패러다임의 전환은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는 질적으로 다른 사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규율사회와 성과사회의 차이점을 끊임없이 대비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는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전환한 것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찾고 있다.
타자에 의한 규율사회가 자기 경영의 성과사회로 대체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성과주체는 (자본주의의 요구에 따라, 자본의 전일적 지배 속에서)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과다한 노동을 수반하는 자기 착취로 나아간다(Han, 2012).
Han, K.S.(2013)은 한병철의 상기한 주장을 간단히 ‘자본주의가 타인 착취에서 이윤 창출의 한계를 느끼자 사람들에게 자유를 던져주고 자기 착취를 유도하도록 진화했다’고 정리했다. 한병철은 착취의 방식이 타자에서 자신으로 변화했을 뿐이지 자본주의 통치 기술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생산적이다...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Han, 2012).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벗어나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는 주장의 근거로서 ‘자본주의의 생산수준의 한계’를 제시한 것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Kang(2017)은 한병철이 제시한 피로사회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한병철이 제시한 피로사회의 주체는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 정확한 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연 이 시대가 규율사회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며, 규율 권력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로사회의 주체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Kang(2012)의 말처럼, 사회 통제의 시스템이 직접 감시를 핵심으로 하는 규율과 처벌에서 형식적 자율성과 리더십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하더라도, 성과사회조차 철저한 규율과 감시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규율사회는 타자착취, 성과사회는 자아착취로 둘로 나누어 도식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더 나아가 그는 자기착취를 외적 강제와 규율의 내면화로 본다. Han(2013) 역시 자기착취’로 보이는 현상이 실은 착취자와 착취사회에 저항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이 현실에 적응한 결과로 간주한다.
Kim(2012)은 한병철이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 통치기술인 ‘규율’을 잘못 이해했다고 본다. 규율은 전적으로 강요와 복종에 의해 일어난 역사적 과정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개인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면서 지식과 생명을 생산하는 자유주의적 통치 과정의 한 단계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통치기술은 단순히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규제와 강요를 느슨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 개인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자신의 자유를 실천하게 만들기, 이것이 자유를 매개로 한 관리와 통치 기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한병철은 자본주의 발전의 요구(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에 따라 통치기술이 타자지배에서 자기착취로 변했으며, 타자가 지배하는 규율사회에서 자기착취의 성과사회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Kang, J.E.(2017), Kang, S.D.(2012), Kim, J.S.(2012)은 타자의 지배를 의미하는 규율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규율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며, 규율 권력의 통치기술로서 자기 착취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를 도식화하면 [Fig. 1]과 같다.
[Fig. 1]에서 보는 것처럼, 한병철은 우리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보지만, Kang(2017), Kang(2012), Kim(2012) 등은 규율사회와 성과사회가 공존하거나, 성과사회는 규율사회에 포함되는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된 주장은 우리 사회가 그 속의 주민들을 탈진과 소진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병철은 자신의 책에서 소진에 대한 에랭배르의 견해를 소개하면서 아래와 같은 비판을 하였다. “그의 분석은 대체로 심리학적이며 정치적 경제적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자본주의적 자기착취의 관계를 읽어낼 수 없다”(Han, 2012)는 것이다. 그러면 소진에 관한 한병철의 분석은 (교육)심리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타당성과 한계를 지니는가?
Ⅲ. 교사소진에 대한 (교육)심리학적 관점
소진의 사전적 정의는 ‘점점 줄어들어 다 없어짐’이다, 교사소진은 교사가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을 잃어버리고 의욕도 동기도 없어진 무기력한 상태를 뜻한다(Suh, 2017). Maslach와 Jackson(1986)은 소진을 측정하기 위해 MBI(Maslach Burnout Inventory)라는 척도를 개발했는데, 국내·외의 대부분의 소진 연구들이 이 척도를 사용하고 있다(Suh, 2017). Malach(1999)는 MBI의 구성 요소로 정서적 소모감, 비인간화, 성취감의 감소라는 세 가지 하위요인을 제시하였다.
Lee(2016)는 이러한 하위 요인들을 바탕으로 교사소진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즉, 교사의 심리적 소진이란 ‘교사 개인의 정서적 자원이 고갈된 상태로, 학생들을 맞이할 때 정서적으로 교환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고(정서적 소모감), 학생들의 부족한 측면을 들추어내면서 냉담하게 대하고 자신이 싫어하는 사물처럼 대하며(비인간화), 학생을 가르치는 자신의 직무에 대한 실패감과 무력감으로 인해(성취감의 감소)’ 학생과 관련된 일을 귀찮게 생각하거나 교직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Palmer(1991)는 이러한 상태를 ‘몸은 교실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딴 곳에 있는 상태’로 비유하고 있다(Khu & Kim, 2014)
이러한 소진이 일어나는 원인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모형이 제시되었다. 요구 통제모형은 직무수행과정에서 직무에 대한 요구수준이 과다한 반면, 개인이 직무를 통제할 수 없다고 지각될 때 소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노력 보상 불균형모형은 노력이 많은데 비해 보상이 적을 때 소진과 같은 심리적인 증상이 나타난다고 본다(Lee et al., 2017). 직무요구-자원모형은 직무요구(높은 직무 압박감, 정서적 요구, 역할 혼란)와 직무자원(사회적지지, 피드백, 자율성), 개인적 자원(자기효능감, 자기존중감, 낙관주의)으로 소진의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교사소진에 대한 국내의 많은 연구 결과를 분석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요구-통제나 직무-자원 모형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교사 신분이 안정되고 보수의 수준이 낮지 않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낮은 인정이나 보수를 교사소진의 원인으로 제시한 연구는 찾기 어렵다.
여기서는 교사소진의 원인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바탕을 두고 교사의 직무요구,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 교사의 인구‧사회학적 특성의 복합적인 관계로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직무요구는 직무 자체의 본래적 성격과 직무환경에 따른 직무 성격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직무자체의 성격은 직무의 수, 종류, 시간, 감정노동, 성과의 지연 등으로 살필 수 있으며, 직무환경은 새로운 직무의 부여, 기존 직무의 성격 변화, 이와 연관되는 교육정책과 제도의 변화로 말할 수 있다.
교사는 교과지도, 생활지도, 행정업무, 그 외의 다양한 업무(연수와 대외 행사 업무)를 한다. 교사가 하는 업무들은 다른 직업에 비하여 종류가 많고 서로 이질적이다. 교과지도와 행정업무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업을 잘 하는 교사가 행정업무를 능숙하게 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성격이 다르다. 이처럼 성격이 매우 다른 업무를 교사는 하루에도 수없이 모드 전환을 하며 수행한다. 또한 교사가 맡은 업무는 수행뿐만 아니라 준비와 마무리 시간이 길고 성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업무들이 여러 다른 업무와 연계되어 있어서 신속하게 처리하기 힘들다.
교사가 맡은 업무는 대체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교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직무인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는 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학교관리자와 동료교사와는 협력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며, 학부모의 권한 신장으로 교사-학부모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요구된다.
교사가 수행하는 직무는 최근 학교 안팎의 환경 변화로 교사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교사가 맡아야 할 새로운 업무가 늘어나고 기존 업무도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돌봄 학습, 방과 후 교육, 급식과 보건 지도, 복지대상 학생지도, 안전 교육 등의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고, 기존의 교과지도에 덧붙여 수업혁신, 컴퓨터 활용수업, 기초학력보장 등의 요구가 증가하고, 자주 바뀌는 새로운 전자문서시스템에 적응을 해야 한다.
또한 기존 업무 중 교과지도는 학생들의 학습동기부족과 수업방해 행위로 어려움이 높아지고, 생활지도는 학교폭력의 증가와 안전사고 예방으로 부담이 증가하고 있으며, 교권이 약화되어 학부모의 부당한 요구나 개입도 커지고 있다. 관리자나 행정가의 일방적 지시나 불공정한 업무 배분, 비민주적 의사결정은 여전하며, 성과중심으로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도 강화되어왔다.
이와 같이 교사가 맡은 직무의 성격과 직무환경의 변화는 교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나아가 소진으로 치닫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같은 직무와 직무환경 속에서 일하는 교사들도 소진에 있어서 개인 차이가 있다. 즉, 직무 자체의 성격과 환경이 모든 교사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고 소진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비슷한 직무를 수행하는 교사들도 소진의 여부와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교사 개인의 내적 요인을 무시하고 교사소진을 말하기는 어렵다. 교사 소진에 영향을 미치는 교사의 개인의 내적 특성 요인으로는 자아탄력성(Kim, Yoon, Li, and Cho, 2016) 교사효능감(Choi,2014; Khu & Kim, 2014), 완벽주의(Hwang & Kim, 2015; Park & Jung, 2018), 5요인 성격(Shin, Cheon, and Kang, 2010), 수치심(Suh, 2017), 문제해결대처방식(Kim, 2017), A형 성격(Lee, 2016) 등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교사의 인구‧사회학적 요인(Kim, 2017; Suh, 2017)도 교사의 소진과 관련이 있다. 이들 요인 중에서 교사의 담당 학년, 담임 여부, 경력, 성별 등은 인구학적 특성이며, 학교의 조직 풍토, 학교 문화, 교장 리더십, 교직원간의 상호 신뢰 등은 사회학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관계를 그림으로 제시하면 [Fig. 2]와 같다.
한병철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한계에 부닥치자 규율사회가 성과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자기 착취의 과정이 심화되어 소진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한병철의 아이디어를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적용하여 교사소진을 설명하는 것은 (교육)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매우 한계를 가진다. 왜냐하면 교사소진은 직무특성이라는 특정 요인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직무특성, 교사의 인구‧사회학적 배경,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 등의 상호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교사소진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한계를 가진다.
첫째, 교사소진이 담임여부, 담당학년, 경력, 성별 등의 인구학적 배경 변인에 따라 달리 일어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교사소진이 학교의 조직 풍토, 학교 문화, 교장 리더십, 교직원간의 상호 신뢰 등의 학교 내적 특성에 따라 달리 일어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교사소진이 자아탄력성, 교사효능감, 완벽주의, 5요인 성격, 수치심, 문제해결대처방식, A형 성격 등의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에 따라 달리 일어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넷째, 교사소진이 직무특성, 교사의 인구‧사회학적 배경,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 등의 상호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교사소진에 대한 (교육)심리학적인 관점은 교직이라는 직무의 성격과 변화 이유, 학교의 조직과 문화적 특성의 존재와 변화 이유,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의 형성과 변화 이유 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교사소진에 영향을 미치는 상기한 여러 특성 요인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들 관계를 통하여 해명하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직 사회가 이러한 모습을 갖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배경을 통하여 교사소진의 문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교사소진에 대한 (교육)사회‧행정학적 관점이 필요한 이유이다.
Ⅳ. 피로사회에 대한 (교육)사회‧행정학적 관점
Kim(2012)은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사회는 신자유주의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본다. 한병철이 신자유주의라는 말 대신에 성과사회라는 표현을 사용한데 대하여 의구심을 보인다. 한병철이 말한 성과사회는 Son(2012)이 제시한 신자유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적극적인 기업가이며 책임감 있는 자유로운 주체이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관리하고 갖추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개인들로 하여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도덕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Son, 2012)
위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병철이 말하는 성과사회, 활동사회,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기착취사회는 손준종이 기술한 신자유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다. Kang(2012), Sung(2017), Kim(2012), Joo(2017) 등이 한병철의 성과사회를 신자유주의 사회로 보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근거를 둔 교육정책과 이것이 교육현장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이 이루어졌다. Shin, Lee, & Jung(2013)은 오늘날 교육은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실천적으로는 신공공관리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신공공관리론에 따라 경쟁원리를 도입할 수 없는 학교교육에도 민간기업의 관리방식을 도입하여, 교육의 질과 효율성, 학교 관리 경영의 강화, 교육성과의 공개, 자기 평가의 강화, 그리고 외부 기관에 의한 평가 등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념과 공공관리론의 지배 속에서 교사소진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에 관심이 있으므로, 교직의 위상 변화와 그에 따른 정체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신자유주의 이념, 관료적 권위주의, 국가주의 이념이 결합되어, 교사를 서비스 공급자로 간주하여 교권이 추락되고, 경영의 효율성 추구로 인하여 업무량이 증가하고 질적인 변화가 높아졌으며, 성과를 중시하여 책무성과 감사(audit)가 강화되고, 자율성의 신장으로 업무모호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져서 교사소진이 일어난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학교의 시장화가 가속되면서 교육이 상품화되고 고객 중심의 운영으로 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추락하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교사의 위상은 전과 같지 않다. 교사는 전통 사회에서 누리던 전통적인 스승의 지위는 물론이고 교육의 전문가로도 믿음을 잃었다. 이제 교사는 '고객'인 학생과 학부모를 위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로 인식되고 있다. 교사는 학교개혁을 주도하는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되어, 겉으로는 교육전문가로 추켜세우지만, 이면적으로 서비스 경쟁에서 밀리면 비난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가시적인 성과와 경영의 효율성을 중시하여 교사가 맡은 업무의 양과 난이도를 증가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객인 학생, 학부모, 사회의 요구는 많아지고 기준은 높아졌다. 이에 따라 돌봄, 방과후 교육, 안전 지도 등의 새로운 업무가 부과되고 교과지도와 생활지도는 학생 인구의 질적 변화와 교육관련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부담이 늘어났다.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가 강화되고 학교컨설팅 등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러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교사의 책무성은 강화되었다. 책무성(accountability)이란 교육기관이 자신이 담당하는 학생에 관한 교육성과를 학생의 보호자들에게 설명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시킬 책임을 말한다(Son, 2012). 이것은 감사를 상시적으로 하는 감사사회(audit society)라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투명성, 형평성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을 감사를 통하여 묻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신자유주의 이념은 서로 대척관계에 있는 진보주의 교육운동과 결합하여 교사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 학생들의 자기주도학습 원리를 강조하는 진보주의 교육이념은 교사의 역할을 ‘가르치는 자’에서 ‘함께 학습하는 자’ 또는 ‘학습을 촉진시키는 자’의 역할로 바꾸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수업 준비와 수업 장면에서의 유연성 유지, 수업 이후의 열린 집담회 참석, 그리고 이들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한 각종 연수를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아동중심교육과 구성주의 철학 이념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고, 재정과 시설 등의 물적 토대가 부족한 가운데 추진된 진보주의 교육은 학교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지렛대가 되지 못하고, 단지 교사의 자발적인 참여와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념 속에 포획되기 쉽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 교육에서는 성과에 대한 학교의 책임을 강조한다. 학교가 기업처럼 스스로 자신의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스스로 닥친 문제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기관리, 자기 경영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Kim, 2012). 이러한 학교의 책임은 교사들의 책임으로 이어지며,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게 된다.
그런데 교사들에게 부여된 자율성 즉 재량의 증가는 학내 갈등과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야기할 수 있다. 학교 조직은 학교 행정가를 중심으로 학년과 업무와 연관된 부장제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서의 재량의 증가는 ‘일을 하는 교사’와 ‘일을 하지 않는 교사’ 간에 갈등으로 이어지고, 학교장을 정점으로 하는 집행부와 평교사들을 대립시키기도 한다. 또한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더 많은 재량을 부여하는 것은 의사결정의 융통성과 유연성을 높이기도 하지만,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돌봄이나 방과후 교육과 같이 학교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두고서 학교와 교사의 고민이 높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고유의 권위적 관료주의 체제는 선택, 자유, 책무성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결부되어 다른 나라와는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Shin, Lee, & Jung(2013)은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국가주의와 결탁한 신자유주의로 여전히 국가주의적 색채가 짙다고 보았다.
여전히 교육과학기술부-교육청-교장-교사로 이어지는 계층제적 권위는 지배적인 교육운영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표면적 자율성, 이면적 통제성’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표면적으로는 자율성을 부여한다고 하지만, 각종 평가와 이에 따른 보상ㆍ제재를 통하여 이면적으로는 (국가의)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Shin, Lee, & Jung, 2013).
그러면 이와 같은 국가의 통제에 대하여 교사들은 왜 저항을 하지 않는가?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은 정부의 적극적 통제나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이른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불리는 기업가적 정신을 가진 개인을 호명함으로써 자기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은 기업과 마찬가지로 신용평가로 등급이 매겨지며, 사회에서 경쟁력있는 상품으로 스스로를 개발ㆍ관리하는 자기 테크닉과 윤리를 구성한다는 것이다(Suk, 2015). 이를 학교교육에 적용하면,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제도나 정책의 모습을 넘어서서 일상적인 삶에서 바람직한 인간상 및 행위 패턴을 지도하는 이념으로 확장되어. 교사들은 자기경영, 자기관리, 자기 책임과 같은 가치들을 내면화한다는 것이다.
Kim(2012)은 이를 교직사회라는 공간 속에서의 교사들의 사회적 생존 행위로 본다. 교사들은 신자유주의 주체로서 자기능력을 부단히 개발하고 향상시킴으로써 자신의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교사들은 고객인 학생들의 문제해결과 성장 그 자체가 중요해서라기보다는 ‘과시적 인정 투쟁’이라는 사회적 생존을 위하여 자신의 능력 계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주체화의 과정(subjectification)과 관련이 있다. 주체화는 개인이 사회의 지배 규범과 가치를 내면화함으로써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주체화는 특정 사회질서와 권력계의 지배 양식이 주체 안에 체현된 총체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사회에서 주체화의 과정은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며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행위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Son, 2012 재인용).
그런데 이러한 주체화의 과정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국가의 지배 권력과 결합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신자유주의 이념은 권위적 관료주의 체제와 국가주의 이념과 결부되어 주체화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신자유주의의 자아 통치성은 국가의 권력에 의한 통치성과 분리되지 않으며, 상호작용하면서 주체성이 형성된다. 교사소진은 국가에 의한 권력 지배 테크놀로지와 자아 지배 테크놀로지의 결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한병철이 말한 성과사회는 (교육)사회‧행정학자들이 논의해 온 신자유주의와 공공관리론이 지배하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성과사회의 등장 배경을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라는 다소 구체성이 떨어지는 한병철의 주장에 비하여,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교육서비스 공급자라는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른 교권의 추락, 경영의 효율성 추구를 통한 업무 양의 증가와 질의 변화로 인한 교사 부담 증가, 성과를 중시하는 풍토에서의 책무성 강화와 감사의 증가, 교사의 자율성 신장에 따른 업무 수행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의 증가 등이 교사소진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겉으로는 자율, 이면적으로는 통제의 강화라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본래적 속성과 함께, 한국의 경우 권위적 관료주의 체제의 상존과 교육이 국가경쟁력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국가주의 이념이 합쳐져서 교사의 주체화 과정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형성된 주체성은 위계적 관료체제의 ‘보이는 통제’에 따른 고통과 함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강제하는 ‘숨겨진 통제’를 통하여 교사소진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Ⅴ. 결 론
Kim(2012)은 한병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두 개념을 대립시키고, 간결하게 서술하고 직관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분법적 구별에 의지하는 서술은 자세한 분석을 건너뛰는 문제점이 있으며, 주요 개념들을 성찰한 학자들의 업적을 충실하게 소개하지 않고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짧은 글 안에서 저자는 선행하는 텍스트들이 발굴한 성과를 재빠르게 자신의 성과로 만드는 솜씨를 보여주며, 이 책의 주제인 ‘성과사회’나 ‘피로사회’에 대하여 자세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분석하거나 서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독일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교사소진과 연관지어 논의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교육 분야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인 교사소진에 초점을 두고 한병철의 피로사회가 교사소진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이와 함께 교사소진에 대한 (교육)심리학적 연구 성과를 검토하여 교사소진에 대한 피로사회가 주는 설명의 한계점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피로사회는 신자유주의 사회와 다르지 않지만, (교육)사회‧행정학에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이념과 공공관리론이 피로사회가 제시하는 피상적인 설명을 넘어서서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개별 학문의 접근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그림을 그리기 위하여 다학문적 접근을 하였다.
연구 결과, 한병철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성과사회, 활동사회, 도핑사회, 존재결핍사회, 고립사회, 자기착취사회, 피로사회로 개념화하였다. 성과중심의 사회가 과잉 활동을 유발하며 활동 과잉을 통하여 주체들이 고립되며 마지막에는 소진과 우울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소진된 인간의 모습을 ‘무젤란’이라는 인물의 사례를 통하여 제시하였다.
한병철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을 자본주의의 생산의 한계 때문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라는 이유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부족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규율사회와 성과사회의 모습이 공존하고 있거나 규율사회 속에 보이지 않는 지배의 형태인 성과사회의 모습이 들어 있다는 점을 밝혔다. 교사소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달리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한병철의 아이디어를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적용하여 교사소진을 설명하는 것은 (교육)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교사소진은 직무 양과 질의 변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자발적 대응이라는 특정 요인뿐만 아니라, 교사 개인의 내적 특성, 교사의 개인 배경, 학교 특성 등의 다양한 요인의 복합적인 관계를 통하여 일어난다는 것이다. (교육)심리학적인 접근은 한병철이 제시하지 못하는 교사소진의 다양한 원인과 이들의 복합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교직이라는 직무의 양과 성격이 왜 달라졌는지, 교사의 개인 배경 및 내적 특성이 무엇에 영향을 미쳤는지, 학교조직과 문화가 어떻게 생기고 변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교육)사화‧행정학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교육)사회‧행정학적 접근은 교육서비스 공급자라는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른 교권의 추락, 경영의 효율성 추구를 통한 업무 양의 증가와 질의 변화로 인한 교사 부담의 증가, 성과를 중시하는 풍토에서의 책무성 강화와 감사의 증가, 교사의 자율성 신장에 따른 업무 수행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의 증가로 교사소진이 일어났다는 점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교사소진은 신자유주의 이념과 공공관리론의 실천, 권위적 관료주의 체제의 유지, 국가주의 이념의 상존 등의 복합적인 산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긍정성의 과잉이라는 자율적 통제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기착취 역시 국가권력의 타자지배와 보이지 않는 강제 속의 자아지배라는 주체성의 상호작용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점에서, 성과사회를 자본주의 생산의 한계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한병철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교육문제에 있어서 생산적인 담론은 체제(자본주의)라는 막연한 주체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특정한 하나의 관점을 유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현상에서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성과사회’에만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전형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논의의 초점은 성과사회를 유일한 사회의 특성으로 보고, 나머지를 배척할 것이 아니라 성과사회의 대두 배경과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원인과 이유에 대한 심도 있는 천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교사의 소진 문제에 대한 교육자와 교육연구자의 주의를 환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교육)심리학적 접근과 (교육)사회‧행정학적 접근을 통한 다학문적 접근의 보완이 피로사회와 교사소진의 관계를 더욱 타당하고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8년도 부산대학교 인문사회연구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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