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에 대한 연구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relationship between personality theory and education of Chinese ancient and to provide data that can be applied to educational field and social organization. In the history of ancient Chinese education, Confucius is the educator who argued that we should not discriminate against human beings the earliest, In Confucius's educational practice, we can conclude that there is no significant distinction in teaching is Confucius' leading idea. Mencius said that he could become an shèngrén like Yáo Shùn according to human efforts. In addition, human beings have a very small discrimination of innate qualities, but the influence of education and environment has changed, and human discrimination has occurred.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nject ethical norms of feudal society into the contents of humanity and then to rationalize these norms with personality theory for the purpose of education.,Chinese ancient educators emphasize the subjective activeness of human beings, the action of environment and education with the view that personality is changeable.,Mencius emphasized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education method is to look back at oneself and save it by oneself.
Keywords:
Personality theory, Education, Environment, Confucius, XunziⅠ. 서 론
교육의 대상은 인간이다. 교육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규모는 교육이 인간의 심신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는 교육철학 연구의 주요한 과제가 된다.
어떤 이념적 기반 위에서 인성과 교육을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연구의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막시즘은 유물사관으로 인간의 본질을 분석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에 대해서도 과학적 인식의 기초를 제공해 준다.
중용(中庸)에서는 인성의 의미를 이렇게 밝혀주고 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품을 다스리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은 가르침이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명을 성이라 하고, 도는 솔선하여 실천에 옮기는 것이며, 하늘이 명한 성에 따라 수양을 하여 도에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 교육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많은 사상가와 교육자들이 이미 인성과 교육의 관계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인성이란 무엇이며, 인간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교육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하는가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고대 교육자들의 사유논리 가운데 인성론은 사람 중심의 교육이 교육내용의 근본이 되어야 하고, 정확한 교육관을 확립하는 데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배경은 춘추전국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인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대사조가 되었고, 중국 고대의 사상적 전통을 수립하고 교육의 필요성을 담론하게 했지만 인성에 대한 논의는 구체적으로 관학이나 사학에서 교육문제로 연결되지 못하여 실제적인 접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Liάngqīchōo (1873~1929)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성문제는 모든 교육, 모든 정치의 출발점이다. 인성을 악하다, 선하다고 주장하는 바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마다 다르고 모든 사회조직이나 정치의 근본이념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이 문제와 실제 생활의 직접적인 관계는 이렇듯 중대하기 때문에 어떤 철학의 학파에서도 모두 이 토론에 참가한다”(Liάngqīchōo, Zhōngguóxiānzhérénxìnglùn).
이 말은 모든 교육과 정치의 근본이 인성을 바탕으로 한 인간중심 교육으로부터 출발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인성론의 의의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검토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 고대 교육자들이 교육과 인성의 관계를 중시했음을 반영해주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중국 고대 인성론과 교육대상, 인성론과 교육적 작용, 인성론과 교육의 목적과의 관계, 인성론과 교육원리 및 방법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은 고문헌에 나타난 교육자들의 주장과 의견을 살펴보아 인성론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추출하고 비교 검토하여 중국 고대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를 연구해 보고자 한다.
Ⅱ. 본 론
고대 중국 교육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인성론은 교육관의 기초를 이루고 교육의 대상을 정하며 교육의 작용을 선정하고 교육목표를 확정하며 교육을 실천화시키는 원칙과 방법 마련의 바탕이 된다. 이를 오늘날 교육과 사회현장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인성론과 교육대상, 인성론과 교육적 작용, 인성론과 교육의 목적과의 관계, 인성론과 교육원리 및 방법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겠다.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인성론과 교육대상
누가 교육받을 수 있고, 받을 수 없는가의 문제는 고대 교육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교육을 받을 권리를 현실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당시의 생산능력, 특히 당시의 정치, 경제적 제도가 결정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농경 생활이 바탕이 되는 봉건사회에서는 생산능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이 반드시 학교 교육을 받은 다음에 사회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대부분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기성세대들과 함께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 생산능력을 기르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갖추어 사회활동에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생산력을 갖출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었거나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계층들은 필연적으로 교육받을 권리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농경사회에서 적은 경우지만 학교 교육은 농경민 자제들을 위해 설립되어 학교 교육을 받는 것이 그들의 교육받을 기회가 되었다. 봉건사회에서의 대부분의 농민자제들은 학교에서 배척당하고, 통치 지배 계층 내부에서도 교육받을 권리가 엄격하게 규제되어 차별이 확대되었다. 고대 교육자들은 교육기회의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의 범주 또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중국 고대사회의 인성론을 교육받는 대상은 사회적 생산력이 있는 지배 계층만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들 소수계층뿐만 아니라 누구나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한 것은 고대 교육자들이었다. 이는 인간의 평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누구나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중국 교육사에서 Confucius(B.C.551~B.C.479)는 사람을 교육하는데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거의 처음으로 펼친 교육자이다. 공자가 생활했던 춘추전국시대의 관학은 노예의 노동에 기반하여 이뤄지고 있었고 엄격한 신분 제한도 있었다. 차별 없이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자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교육은 태생적 차별이나 출신 지역의 문제를 떠나 평등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신분제도의 타파를 주장하였다. 공자의 이런 사상은 당시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교육에 구별이 없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공자는 ‘인성은 서로 가까우나 익히는 데는 서로 멀다’고 했다. 또한 인간의 선천적인 소질의 차이는 매우 작은데 교육과 환경의 영향이 달라 인간의 차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공자는 평등한 인성관에 근거하여 교육의 대상 범주를 확대하고 일반 평민에까지 미치게 했다. 이러한 공자의 교육실천에서 가르치는데 구별이 없다는 것이 그의 주도적인 사상이라고 우리는 단정할 수 있다. 그 밖에 공자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태어나면서 아는 자는 가장 뛰어난 자요,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요, 배워도 통하지 못하는 자가 또 그다음이니 배워도 통하지 않으니 배우려 하지 않으면 백성으로서 하등한 인간이 된다”고 하였다(Lúnyǔ Jìshì).
어떤 학자는 이 말을 공자가 인간의 학습능력을 구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공자가 역설한 중요한 부분을 짚어 보면 그의 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거의 접근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의 의견이 당시의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었다는 주장은 긍정적으로 판단하는데 이견이 있을 수 있다.
Mencius(B.C.372~B.C.289)는 비교적 농민을 본위로 하는 색깔이 두드러진 교육자이다. 그는 인류는 선천적으로 선성이 갖추어 있다고 보아 “성인과 우리는 같은 부류이다”고 하였다(Mencius Gàozīshang). 이 말은 성인과 일반인이 동류라는 것이다. 단지 노력 여부에 따라 보통 사람들도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Xunzi(B.C.298~B.C.238)도 인성은 서로 한 가지라고 하여 “대개 인성은 요순과 같은 성인이나 보잘 것 없는 인물이나 하나이다. 군자와 소인의 인성은 같다”라고 하였다(Xunzi, xìng’è). 그는 “재주와 인성, 지능이 군자나 소인은 한가지다(Xunzi, xìng’è)”고 하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두 같은 인식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순자와 맹자의 인성론에는 서로 대립되는 점이 많다. 반면에 두 사람의 생각에는 일치하는 점도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은 모두 신흥지주계급에 속한 인물로 그들의 주장이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지위를 합리화하는데 중요한 논리적 근거로 쓰여 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귀족들의 천명사상이 비판을 받게 된다.
동중서는 처음으로 인성을 세 가지 종류로 분류해 볼 수 있다는 성삼품설(Liàoqífā, Xiān QínLiǎngHànrénxìnglùnyǔjiàoyùsīxiǎngyánjiū)을 주장한 교육자이다. 그는 하늘로부터 날 때 가지고 나온 과선(過善)의 성을 지닌 성인의 성품을 상품이라고 한다. 이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태생적으로 갖추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며 후천적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여 통치계급을 가장 상위층으로 규정하고 천부적 지위로 예악을 만들고 법도를 세우며 만민을 통치 교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른바 하찮은 것(斗筲之性)을 하품(下品)으로 간주하고 이들은 날 때부터 악하여 교화도 효용이 없고 단지 형법으로 그들을 대처해야 할 뿐이라고 하였다. 가장 빈천한 노비, 노예를 가리키는 것이다. 반면에 중민은 착한 소질이 있으나 자연스럽게 착해질 수 없고 교육과 훈련을 받은 후에야 착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는 일부 통치자, 일부 피통치자도 포함되어 있다. 동중서의 사상은 인간이 모두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고대의 평등사상을 부인한다. 그리하여 최고의 황제 권한을 신성화시키고 전제 통치의 절대화 및 사회 계층적 구조의 영속화를 추구하는데 이론적 근거가 된다.
성삼품설은 후에 적지 않은 교육학자들의 수정을 거쳐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송명대 성리학자들에 이르러 더욱 정교화되었다. 통치 집단의 정치적 입지가 계속 유지되면서 봉건사회의 계급간의 불평등과 서로 일치되는 부분이다. 성삼품설의 이론적 목적은 현실사회에서 상이한 사회적 계층에 속한 사람의 성품이 선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며 교육과 자신의 노력으로 선을 실현할 수도 있는데 이 모두가 선천적으로 결정된 것이며 세 가지 종류의 인성의 성질은 고칠 수 없다고 한다.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한 사상가들은 바로 이런 차별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선이 되고 악이 되는 것을 해석하려고 하고 이로 인하여 발생되는 상이한 사회적 지위와 교육권의 문제가 야기된다고 하였다.
요컨대 교육자들의 교육의 권리문제에 대한 인식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적 계층의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일 이해관계에 의해 교육권의 향방이 정해진다면 인성론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유전적 형질이 인간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유전적 형질의 차이가 인간의 심신 발달에 개별적인 특징을 구성하는데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천부적인 차이가 인간의 성장 발달 과정에 일으키는 작용은 크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악은 선천적인 유전적 형질로 예측할 수 없다.
2. 인성론과 교육적 작용
중국 고대 교육자들은 종종 인성과 교육의 관계를 통하여 교육이 인간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와 토론을 펼쳤다. 맨 먼저, 이들이 주장하는 바를 보면 인성은 변할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해 인정하는 정도가 다르고 교육적 작용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누어진다. 공자는 교육적 작용을 매우 중시했다. 그는 ‘익히는데 서로 멀다’는 것을 이론적 바탕으로 삼아 교육이 인성 형성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어질기만 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이 어리석게 되고, 지혜만 있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호탕하게 되며, 믿음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해치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정직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급하게 되고, 용맹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지럽게 되고, 강한 것만 좋아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경솔하게 된다(Lúnyǔ Yánghuò).”
이는 인간이 만일 교육을 받지 않으면 진정으로 인(仁), 지(智), 신(信), 직(直), 용(勇), 강(剛) 등의 각종 도덕적 자질을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갖춰야 할 각종 바람직한 자질이 있다 할지라도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런 좋은 자질이 어리석고, 호탕하고, 남을 해치고, 어지럽히고, 경솔하며 부도덕한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교육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되는 것으로인식했다. 그는 인간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옷을 입고 편안하게 거처하나 교육을 받지 못하면 금수에 가깝다고 했다. 관건은 그 본성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의 여부이다. 교육적 작용이 바로 인간의 흩어지고 잃어버린 선성(善性)을 회복하게 해주어 본래의 선성을 지키고 확충해 준다는 것이다.
“무릇 사단(四端)이 나에게 있는 것을 더 넓혀서 채울 줄 알면 마치 불이 처음 타오르거나 샘물이 처음 나오는 것과 같을 것이다. 만일 이것을 채울 수 있다면 충분히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채우지 못한다면 부모도 섬길 수 없을 것이다(Mencius gōngsùnzhùshang).”
선성을 확충하면, 대인, 현인, 성인도 될 수 있지만 자포자기하여 노력을 하지 않거나 본래 선성을 상실하면 소인, 야인, 혹은 금수와 다름이 없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작용이 있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스승과 법이 없으면 아는 것이 있어도 도둑이 될 것이고 용맹하면 강도가 될 것이며 재능이 있으면 반드시 세상을 어지럽게 할 것이다. 살펴보건대 반드시 괴변을 할 것이고 변론을 하면 반드시 허황한 말을 할 것이다. 스승이 있고 규범에 따르는 인간은 지혜가 있어 슬기로우면 속히 통달하고, 용맹하면 속히 위엄이 서고, 유능하면 속히 성공하며, 고찰하면 속히 만사를 다 알게 되고, 변론하면 속히 시비를 밝힐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의 법을 가진 것은 사람의 큰 보배요 스승과 법이 없는 것은 사람의 큰 재앙이다. 또한 천한 신분의 사람이 귀하게 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 되며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 그것은 오직 배우면 가능하다. 위로는 성인이 될 수 있고 아래로는 선비, 군자가 되는 것을 누가 감히 금하겠는가(Xunzi Rúxiào)?”
교육은 어리석은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악한 자를 선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치와 경제적 지위도 바꿀 수 있다. 동중서는 인성을 성(性)과 정(情)의 대립 된 두 개의 요인으로 나누면서 “신체의 이름은 모두 하늘에서 얻었고 하늘은 음양이라는 두 가지를 베풀었으며 몸에도 역시 두 가지 즉, 탐욕과 어진 인성이 있다”고 하였다(Chun Qui Fan Lou, shēnchámínghào). 하늘에는 음양이 있고 인간은 하늘의 복사체이기 때문에 인성에도 역시 성과 정이 있다고 하였다. 동중서는 인성에는 선단(善端)이 있으나 바로 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선단은 반드시 교육을 통해야만 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말하기를 “오늘날 만민의 성은 밖으로 교육을 받은 다음에 선이 될 수 있다. 선은 교육이 맡은 바이지 성이 맡은 바는 아니다”(Chun Qui Fan Lou, shēnchámínghào)고 하여 선, 교육의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이미 인간의 성은 외부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선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선은 교육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지 성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성은 누에고치와 알에 비유될 수 있다. 계란은 이십여 일 동안 잘 품어주어야 병아리로 거듭날 수 있고, 누에고치는 끓는 물에 삶은 다음에 실을 뽑을 수 있으며, 성은 점진적으로 가르치고 훈도한 다음에 선이 될 수 있다. 인성은 벼에서 나왔지만 벼가 모두 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은 성에서 나왔으나 성은 모두 선이 될 수 없다(Chun Qui Fan Lou, shíxìng).”
여기서 동중서는 선은 교육의 결과라고 하면서, “선이란 가르쳐서 그렇게 된 것이지 그저 소질로 인하여 그런 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Chun Qui Fan Lou, shíxìng).
Wang Chōng(27~ 97 추정)은 비록 인간의 선악이 물질적인 성의 기(氣)에 기원하지만 그는 인간은 궁극적으로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모든 기의 깊고 얕은 바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고 교화에 있으며 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성의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고 인성은 선으로 또는 악으로 변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교육에 있지 본성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선은 교육에 있지, 유독 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선은 양육하고 권하고 이끌어서 되는 것이지 그런 교육의 영(令)이 서지 않으면 악에 가깝고, 악이라 할지라도 보완하고 본성을 지키며 금할 것은 금하는 그런 교육에 의한 노력으로 점차 선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lùnhéng, shuàixìng).
그는 특히 세상에는 변화할 수 없는 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교육이 불가능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교육이 인간 발달에 핵심적인 작용을 하는 것을 충분히 인정하였다.
송명대 성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중국 고대에 인성과 교육 관련 인식에 한 단계 진전을 가져왔다. 춘추전국시대에서 한당대 교육사상의 대부분이 현실 속의 경험을 통해 얻은 결론이라면 송명대 성리학 이후는 교육사상의 사변적, 철학적 성향이 강화되어 교육 작용에 대하여 밝힌 내용도 더욱 정치해지고 심화 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한층 더 교육이 인성의 형성에 주도적인 작용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점진적으로 교육이 어떻게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가? 그리고 어떠한 영향을 결정적으로 미치는가를 연구하였다.
Zhūxī((1130~1200)는 성리학의 집대성자이다. 그는 인성을 이렇게 규정한다.
“사람마다 품수 받은 기에는 어둡고 밝고, 맑고 탁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기에 맑은 기운을 품수 받은 자는 성인이나 어진 사람이 된다. 마치 보배로운 진주가 맑은 냉수 가운데 있는 것과 같다. 기에 탁한 것을 품수 받은 사람은 어리석거나 미련하게 된다. 이는 마치 진주가 탁한 물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덕을 밝힌다는 것은 바로 탁한 물 가운데 이 진주를 닦아 내는 것이다(yǔlèi, juǎn 4).”
교육적 작용은 기질지성(氣質之性)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기질을 변화시켜 기질지성 가운데 선험적인 선성을 발휘하여 사덕(四德: 천지자연의 네 가직 덕으로 元, 亨, 利, 貞)에 따라 만들어 가면 곧 인심으로 하여금 도심(道心)에 복종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위태로운 인심이 편안한 상태로 바뀌어 도심이 발현되고 완전한 모습을 띠게 된다. 이는 자연의 이치를 되찾은 것이며 인간의 욕망을 타파하는 작용이기도 하다.
명청대 나타난 선진 사상가들은 송명대 성리학을 비판하고서 그들만의 이론체계를 확립하여 중국 고대 인성론과 교육사상의 절정을 이룬 뛰어난 분야가 되었다. 이를테면 Wang Fuchih (1619~1692)는 교육은 인간 형성과 발달과정에 세 가지 측면에서 작용을 한다고 했다. 이는 먼저 타고난 성에 영향을 끼쳐 잠재적인 인식능력을 강화・발전시키고, 둘째, 교육과 학습에 의해 지식과 재능을 습득할 수 있고 도덕의식을 확립할 수 있으며, 셋째는 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교육받지 못했거나 교육의 영향권에 들어가지 못하여 형성된 나쁜 습관을 없앨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 발달에 미치는 작용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중국 고대 교육자와 사상가들의 일관된 전통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풍부한 사상적 자료는 오늘날 인간의 심신 발달과 교육과의 관계를 연구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다음으로 인성이 가능성에서 현실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교육이 미치는 작용을 인정한 다음 교육적 작용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교육자들이 아직도 인성론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다. 이 문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관점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맹자, 순자를 대표로 하는 관점이다. 이들은 누구든지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환경과 교육이 인간발달과정에 의미 있는 역할을 결정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송명대는 왜 교육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가,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가를 점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동중서, 한유를 대표로 하는 관점이 또 하나이다. 이들은 사람에 따라 심신에 각각의 상이한 작용을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교육의 작용은 한계가 있고 교육도 인성론에서 이미 규정한 타고난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교육은 가장 뛰어난 사람(上品에 해당하는 사람)이 배우면 더욱 명석하게 하지만 중간 정도의 수준에 있는 사람(中品)이 교육을 받으면 위로 또는 아래로 변화가 가능하다고 하였다. 하지만 가장 낮은 수준의 사람(下品)은 형법이나 제도로 다스려 그들로 하여금 두려움이나 위엄을 느끼게 하여 죄를 적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인성은 변화 가능하지만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품격은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였다.
중국 고대의 교육자들은 인성은 바뀔 수 있다는 관점에서 인간의 주관적인 능동성, 환경과 교육의 작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들의 교육적 작용에 대한 인식은 현실에 바탕을 둔 경험으로 결론에 도달했다. 교육의 결정적인 작용에 대한 관점은 인간을 세 등급으로 나눠서 보는 관점에 비하면 더욱 획기적인 면과 한걸음 진보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교육자들의 인성에 대한 논쟁과 탐색은 우리에게 귀중한 사상적 자료로 남겨 둠으로써 다양한 인성에 대한 관점들은 오늘에까지 여전히 탐구의 가치가 있다.
3. 인성론과 교육의 목적과의 관계
교육목적은 교육행위를 위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든 욕구의 총합을 교육을 통하여 피교육자가 어떤 형태의 의도된 인간으로 길러질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다. 중국 고대 교육자들은 모두 교육목적을 중시했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 계층의 한계로 말미암아 그들이 교육목적 문제에 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했다. 고대 교육자들의 눈으로 보면 사회변화에 따라 변화된 교육목적은 탐구할만한 가치가 없었다. 단지 불변하는 교육목적은 인성론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이런 일정한 역사적 시기의 교육목적은 하늘을 경으로 삼고 땅의 뜻을 받아들이는(天經地義) 것이 만고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층 간의 이익을 도외시한 채 교육목적을 필요로 하고 그런 교육목적은 스스로 인성의 결과라고 말한다. 맹자는 교육의 목적이 인륜을 밝히는데 있다는 점을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夏)나라에서는 학교의 이름을 교(校)라고 하였고 은(殷)나라에서는 서(序)라 했고 주(周)나라에서는 상(庠)이라 했는데 학(學)은 삼대가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 이는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었다. 또 말하기를 인륜을 가르치는데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고 군신 간에는 의리가 있으며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장유 간에는 질서가 있고 친구 간에는 신의가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Mencius, xīwéngōngshang).”
맹자는 반복해서 인륜이 인성 가운데 존재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논증함으로써 이런 인륜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으로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런 선험주의 교육목적론은 분명히 문제가 없지 않지만 전국시대 교육자인 맹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미 교육받은 자의 몸과 마음에서 교육목적의 근거를 찾기 시작했고 이런 안목은 인성교육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대학』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유가의 교육사상을 총결산한 것이다. 『대학』에서는 교육의 목적을 ‘대학의 도는 덕을 밝히고 국민을 친하게 하고 지선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고 개괄하고 있다. 덕을 강조한다는 것은 인륜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요, 국민을 친숙하게 여긴다는 것은 덕치와 감화 정치의 정신으로 교화를 준다는 것이며 또한 민중에 대한 교화를 실시하여 오래 전부터 부조리한 것들을 없애 국민이 서로 친하게 하는 것이다. 지선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전 사회가 도달할 이상적인 지선의 경지를 말한다. 이는 인간이 인(仁)에 머물러 살며 신하가 공경하며 자녀들이 효도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며 국민들이 서로 교류하는데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대학』의 저자는 분명 성선론의 영향을 받았다. 자신이 제정한 교육목적을 인성은 본래 선하다는 바탕 위에서 봉건사회의 윤리 규범을 인성의 내용을 중심으로 제정하여 교육의 목적으로 활용하였다. 『대학』에서 제시하는 교육목적은 봉건사회에서 매우 장기간에 걸쳐 교육의 근본 목적이 되어 그 영향은 매우 오래도록 미쳤다.
중국의 고대 교육목적의 또 다른 특징은 덕육을 위주로 하는 교육목적의 구성 체계를 수립한 점이다. 중국 고대 교육자들은 인간교육의 목표의 중점을 도덕성을 함양하는데 두었으며 덕육이 교육목적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는 지식교육, 체육, 미육 등 어디에 비교할 수 없었다. 이는 당시에 산업, 생산의 발달 수준으로 인하여 중국 고대 문화의 특징에 따라 결정한 바이나 이론적으로는 인성론을 통하여 완성된 것이다. 인성론은 교육을 위해 활용되는 이론적 바탕이며 교육의 임무는 인간을 교육하는 것이다. 도덕은 인간의 본질적 요소이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덕적 품성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4. 인성론과 교육원리 및 방법의 관계
교육원리와 방법은 고대 교육사상의 중요한 요소이다. 고대 교육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교육을 실천하는 일에서 교육과 관련된 주요한 문제에 대응하고 교육과정에서 일종의 보편화된 법칙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의미 있는 교육원리와 방법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정립된 많은 내용은 인간의 본질적인 인식에 기반하여 세워진 것들이다.
고대 교육사상에서 인성론은 자율적인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다. 이들은 각각 다른 인성론의 이론적 바탕을 세워나갔다. 자율적인 원리를 주장하는 교육자들은 교육이 피교육자의 잠재된 마음을 수양하는데 역점을 두어 안내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자아 통제능력과 선한 행위를 본위로 하는 자각성을 강조한다. 성선론을 주장하는 교육자들은 대부분 이런 관점을 지지한다. 맹자는 맨 먼저 성선론을 제시했으며 동시에 자율적인 원리를 강조한 교육체계를 수립했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의예지는 밖에서 나를 단련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고유한 것이다. 인간에게는 모두 차마 참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어린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모두가 측은한 마음이 드는데 이는 안으로 어린이의 부모와 교분이 있어서도 아니요, 고장의 친구관계나, 명예 때문도 아니요, 나쁜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Mencius, xìngshàn).”
이미 착한 본성이 인간에게 모두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교육의 임무는 밖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단지 수양을 강화하면 선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방법에서도 맹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아 구할 것(反求諸己)을 강조했다. 그는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않거든 그 인(仁)을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그 지혜로움을 돌이켜보고, 사람에게 예를 해도 답례하지 않거든 그 공경함을 돌이켜보며, 행하고도 얻음이 없거든 모두 자신에게 돌이켜 찾아야 한다”고 했다(Mencius Lílóushang).
인간이 학습하는데 반드시 주관적인 노력이 요구되는데 부단히 탐구하는 의지를 가짐과 동시에 적극적인 자각으로 스스로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Wáng Yángming(1472-1529)도 자율적인 원리를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선과 악을 말하는 것은 참으로 망령된 말이다. 나의 마음 가운데 있는 양지(良知)를 놓고 또한 왜 몸으로 살펴서 알려고 하는가? 또 말하기를 나의 마음에 있는 양지를 천리라고 말한다. 나의 마음에 존재하는 양지의 천리를 알 수 있는 것은 사사물물이고 사사물물에 모두 그 이치가 있다(wángyángming, Dàxuéwèn).”
왕양명이 인식한 교육의 주요한 문제는 어떻게 이 양지에 이르는가 하는 문제였다(wángyángming, shūwèishīmèngjuǎn). 그는 여러 차례 마음을 보존하기(존심:存心), 마음을 다하기(진심:盡心), 마음 밝히기(명심:明心), 방심한 마음을 거두어들이기(수기방심:收其放心), 그 마음을 구하여 얻는 것(구득기심:求得其心) 등의 수양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타율적인 교육원리를 강조한 교육자들은 학생의 행동이 사회에 대한 모종의 결과를 이끌어 낼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사회규범에 바탕을 둔 도덕을 학생에게 가르치는 것을 중요시하면서 학생이 사회규범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학생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은 채 그들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 강조한다. 성악설에 기초한 교육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이런 학설을 주장한다. 순자(荀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인성에서 바람직한 것을 끌어낼 방법이 없으면 성인이라도 예외가 아니라고 한다.
“선인이 생각을 내서 인위적으로 성을 익히게 하고 예의를 짓고 법도를 마련한 것이다. 그러면 예의와 법도는 성인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요, 원래 성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Xunzi, xìng’è).”
그는 교육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長遷而不反其初, 오랜 기간에 걸쳐 후천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래 처음의 본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 교육적 작용은 인성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인성의 변화가 작위적인 것, 의지적 실천을 통해 본성의 변화를 가져온다고 하는 화성기위(火性起爲)(Xunzi, xìng’è)를 주장하면서 장기적인 변화 과정을 거쳐 다시 그 본래 면목을 회복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교육과정은 교사가 학생의 성정(性情)을 변화시키는 것이요, 학생의 행동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자 사회의 예의 규범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대부분의 교육학자들은 성리학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주체적인 작용을 발휘하는데 주력한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 타율을 강조한 교육자들은 교육의 실질적인 내용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배양하는 것이라고 보고서 이런 인간은 사회가 인정하는 지식기능과 도덕적 규범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적 요청을 과도하게 강조하면 종종 학생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놓치기 쉽다. 이런 두 학파의 서로 다른 관점은 인성에 대한 탐색을 통하여 풍부한 사상적 자료를 제공하고 교육사상을 위한 심도 있는 연구에 기여했다.
학습의 과정에서 돈오(頓悟, 불교에서 문득 깨달음, 혹은 몰로 깨달음을 지칭함)와 점오(漸悟, 불교에서 점진적인 수양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말함)를 말하는데 이 역시 인성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맹자는 인성과 하늘은 서로 합치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하늘이 만물을 형성했다는 것은 만물에 인성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마음의 기능은 생각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못하면 얻지 못한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다. 먼저 그 큰 것에 선다면 그 작은 것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니 이는 대인이 되는 이유일 따름이다(Mencius Gàozīshang).”
학습과 수양의 길은 큰 곳(거시적)이고 본원에서 착수해야 할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께서 노나라 동산에 올라가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구경한 자는 큰 물 되기가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 유학(遊學)한 자는 훌륭한 인물 되기가 어렵다. 물을 구경하는데 방법이 있는데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은 밝음이 있어서 빛을 원하는 곳에는 반드시 비춘다(Mencius Jìnxīnshang).”
수양과정에는 거시적으로 마음 가운데서 시작하여 일단 자기의 본래 마음이 착한 것임을 알고 그 마음을 간직하기 시작해야 스스로 존재하는 선으로부터 선의 경지를 자각할 수 있다. 즉흥적으로 느끼는 혼란스러운 것들은 인정되지 않는다. 순자는 학습과 수양은 한걸음 한걸음 수행해가는 것으로 보고 양적으로 집적되어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장기간에 걸쳐 그 기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안구이질:安久移質)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 본래성으로 회복될 수 없다(안구이질은 후천적으로 오랜 시간의 노력을 통한 질적인 변화로 옮겨가는 것이라면 장천불반(長遷不反)은 그런 노력에 의해 옮겨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원초적 본래성으로 회복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는 사상을 제기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흙이 모여 산이 되면 바람과 비가 일어난다. 물이 모여 못이 되면 용이 살고 착한 것이 쌓여 덕을 이루면 스스로 신명에 통하여 성인의 마음씨가 갖추어진다. 그러므로 한 걸음씩 걸어가지 않으면 천리 길을 갈 수 없고 작은 냇물을 많이 모아야 바다를 이룰 수 있다. 성공은 쉬지 않는 데 있다. 깎다가 놓으면 썩은 나무도 자르지 못하고 새기고 새기어 쉬지 않으면 돌이나 쇠도 깎일 것이다(Xunzi Quànxué).”
또 말하기를 “군자의 학문은 매미가 껍질을 벗고 성장해가는 것과 같이 점차로 조금씩 옮겨 변화·발전해 가는 것이다”고 했다(Xunzi Dàlüè). 그리하여 교육이 꾸준히 쌓아가는 노력(積)과 점진적으로 실행(漸)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맹자와 순자는 학습, 수양에 대한 관점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후래 사상사에서 어떤 교육자들은 맹자의 수양방법이 후에 돈오설(頓悟說, 불교에서 문득 깨달음에 이른다는 이론을 비유하여 본성에 회복하는 길이 후천적으로 장기간의 노력보다는 순간적인 깨달음에 의한 각성을 제기함)로 발전되었다고 하며, 순자의 수양방법은 점오설(漸悟說,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는데 점진적인 후천적 노력에 의해 가능하다는 이론을 빌려 순자의 수양론을 비유함)로 발전되었다고 주장한다.
Ⅲ. 결 론
춘추전국시대 유가, 묵가, 도가, 법가 등의 치열한 사상 논쟁은 중국 인성론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진한 이후 명청대에 이르기까지 유가의 윤리사상의 중심은 인성론이 되었고 인성은 교육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성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좋은 재능을 가졌더라도 그것은 재앙이 되며, 사회에 더 큰 폐를 끼치게 됨을 중국 고대 교육자들은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인성론은 중국인의 교육관에 영향을 주었다. 선진시기의 공맹, 송명대의 이학을 거쳐 신 유가에 이르기까지 인성론은 대학 중심의 중국 문화의 정수가 되어 도덕 가치관을 중심으로 한 인생 철학이 되었다. 중국에서 인성론은 교육의 중심에서 진정한 사람을 육성하는 기본 핵심역량 역할을 하였다.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는 저출산 시대의 가정에서 형제자매 관계에서 체험하지 못한 협동과 배려심을 학교 교육에 적용하면 민주시민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으로 자라게 할 것이다. 인성론과 교육의 관계에서 이는 사회적인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회비용을 줄이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과학과 산업, 정보가 급속도로 발전할수록 사람이 중심이 되도록 인성교육을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면 오히려 발전이 재앙이 될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전환기에 인성교육은 교육현장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협력과 배려의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덕목이며, 현대의 교육과 정치, 사회 등에 적용하여 인간중심의 바람직한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요소라고 사료된다.
References
- Confucius, Dongyang Gojeon Hakhwoi(2000). Lúnyǔjízhù Jìshì, Youdohwochulpanbu, 312.
- Confucius, Dongyang Gojeon Hakhwoi(2000). Lúnyǔjízhù Yánghuò, Youdohwochulpanbu, 314.
- Dǒng Zhòngshū, Nam GH(2005). Chun Qui Fan Lou, shēnchámínghào, Jayoumoongo, 302~303.
- Dǒng Zhòngshū, Nam GH(2005). Chun Qui Fan Lou, shíxìng, Jayoumoongo, 313.
- Im SM, Oh JS, Park SY, Won HH, Park JU and Kang BD(2014). A Qualitative Analysis on Implementation of Creativity and Character Education in Schools, Journal of Fishiers and Marine Sciences Education, 26(6), 1306~1314. [https://doi.org/10.13000/JFMSE.2014.26.6.1306]
- Jang JW(2015). Comparative Studies of China Ancient Humanism Theory on the Historical Background, Journal of Fishiers and Marine Sciences Education, 27(3), 735~746. [https://doi.org/10.13000/JFMSE.2015.27.3.735]
- Jang JW(2016). A Study on the Main Categories and Educational Influence of Chinese Ancient Humanism, Journal of Fishiers and Marine Sciences Education, 28(1), 137~149. [https://doi.org/10.13000/JFMSE.2016.28.1.137]
- Jang JW(2018). A Study on the Controversy of Ethical Thought in the Chinese spring and Autumn Period and the Age of Warring States , Journal of Fishiers and Marine Sciences Education, 30(6), 1901~1912. [https://doi.org/10.13000/JFMSE.2018.12.30.6.1901]
- Kim DH(2014). A Study on the Discourse of Education for Social Justice, Jour. Fish. Mar. Sci. Edu., 26(3), 474~484. [https://doi.org/10.13000/JFMSE.2014.26.3.474]
- Kim GC, Do BT, IlWon IG, Go DS, HwangMok GO, WooGi YTR, SanHa YI, JwaDeung JI, HuDeung GS, SanGu IL and YouJeon HB and Jo SE(1996). Joungguksasangsa Wángyángming, Dàxuéwèn, Yron & Silcheon, 289~291.
- Liàoqífā, iānQínLiǎngHànrénxìnglùnyǔjiàoyùsīxiǎng yánjiū, chóngqìngchūbǎnshè, 1999.
- Liάngqīchōo(1926). Zhōngguóxiānzhérénxìnglùn, Shānxīrénmín, 4.
- Lyu MJ(1995). Joungguksasangsa Xunzi Dàlüè, Ymoonchulpansa, 370.
- Lyu MJ(1995). Joungguksasangsa Xunzi, xìng’è, Ymoonchulpansa, 378~379.
- Lyu MJ(1995). Joungguksasangsa, Ymoonchulpansa, 222.
- Mencius, Lee JH(2006). Menciusjeongeui Lílóushang, Solchulpansa, 306.
- Mencius, Lee JH(2006). Menciusjeongeui Gàozīshang, Solchulpansa, 482.
- Mencius, Lee JH(2006). Menciusjeongeui gōngsùnzhùshang, Solchulpansa, 159.
- Mencius, Lee JH(2006). Menciusjeongeui Jìnxīnshang, Solchulpansa, 574.
- Mencius, Lee JH(2006). Menciusjeongeui Xīwéngōngshang, Solchulpansa, 225.
- Park JY(2009). A Study of Wáng chǒng’s Mìngdìng Theory, WonKwang University, 105~106.
- Xunzi, Yoon OY(1983). Dongyangeuisasang Quànxué, yangwoodang, 50~51.
- Xunzi, Yoon OY(1983). Dongyangeuisasang Rúxiào, yangwoodang, 169~170.
- Yǔlèi, juǎn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