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Society Fishries And Sciences Education
[ Article ]
The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for Fisheries and Marine Sciences Education - Vol. 32, No. 1, pp.269-283
ISSN: 1229-8999 (Print) 2288-2049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29 Feb 2020
Received 23 Dec 2019 Revised 03 Jan 2020 Accepted 10 Jan 2020
DOI: https://doi.org/10.13000/JFMSE.2020.2.32.1.269

덕육중심의 중국 고대 교육체계에 대한 연구

장종원
동명대학교(초빙교수)
A Study on education system centered virtuous action in Ancient China
Jong-Won JANG
Tongmyong University(Visiting professor)

Correspondence to: 051-629-3612, cjwon0417@hanmail.net

Abstract

This paper is to study the fact that the educational system of ancient China was composed of virtuous action, which can be used in the modern times where technology and information have developed. Therefore, it can be a study that reminds us that virtue is emphasized more in the age of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he purpose of education is to reveal what feudal morality demands from people, knowledge education is the basis of moral education and necessary to cultivate morals. The ideal human resource development has been based on the moral education and its basic and content, and the reason why moral education should be the center of the whole curriculum is because human beings are moral beings. But uniform moral education has been one of the causes of the development of natural science and technology in China for hundreds of years. This is a problem to be raised, and furthermore, it is time to study the utilization of moral education.

Keywords:

Education system, Moral education, Upbringing process of human resource, Virtue development

Ⅰ. 서 론

중국 고대 교육의 발전을 살펴보면 비록 교육자들이 교육의 내용과 기준, 교육의 과정과 원칙에 있어 이해하는 정도는 서로 달랐지만 기본적으로 모두 덕육을 중시하였다. 중국 고대 교육, 특히 유가교육의 주요내용은 사람을 가르쳐서 어떻게 사람답게 하는가? 라는 사람됨의 도리를 제시하였다. ‘사람됨’의 방법은 곧 덕육이론의 체계가 되었다. 덕육이란 ‘사람됨’을 위한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것으로 덕육교육은 인성함양 위주의 교육과정과 내용을 말한다. 따라서 중국 고대에 있어 덕육의 내용은 교육의 주요 내용이 되었다. 덕육은 끊임없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였고, 교육자의 교육사상은 기본적으로 도덕을 연구하고 도덕교육을 하는 것을 주요한 것으로 삼았다.

Qiánmù는 “중국에서 최근까지도 중시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도덕과 교육이다. 교육의 중심은 바로 도덕이다. 따라서 나는 항상 중국 문화정신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즉 도덕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Zhōngguówénhuàshǐdàolùn, 1984). 교육의 기본은 도덕교육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동서양과 고금을 막론하여 소중한 담론이다. 따라서 이러한 도덕중심 교육의 본질은 사람됨의 교육이며 진정한 인격을 갖추지 못하면 교육은 한낮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현대의 교육은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을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도덕중심의 덕육교육을 연구하여 현대교육의 부족한 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연구는 중국의 고대 교육의 중심은 덕육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어떻게 현대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연구방법은 중국 고대 문헌 가운데 논어, 맹자, 순자, 이정집, 춘추번로 등 춘추전국시대부터 송대를 중심으로 살펴서 해석하여 덕육 중심의 교육목표, 교육과정, 교육내용을 구분하여 정리하고 시사점을 찾으며, 덕육중심의 지식교육, 교사의 역할, 도덕 교육에 대한 중국 고대 국가별 관점을 찾아 연구해 보기로 한다.


Ⅱ. 본 론

중국 고대 사상체계는 덕육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것은 몇 가지 방면에서 알 수 있다. 이것은 교육체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육목표, 교육과정, 교육내용, 덕육 중심의 지식교육, 교사의 모범적 자질이 가장 중요한 도덕교육, 국가에서 도덕교육을 가장 중시함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중국 고대사회는 이러한 덕육중심의 교육을 통해서 국가통치의 일원화를 꾀하고자 하였으며 다음의 여섯 가지 요소를 통해 교육목적이 궁극적으로 국가통치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 덕육 중심의 중국 고대 교육의 목표

교육목표는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의 발전수준 및 교육을 받는 사람의 발달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교육목표는 국가 혹은 교육자가 이른바 기대하는 피교육자의 발전 성과이다. 덕육은 사회의식 혹은 윤리・도덕이 피교육자 개개인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다. 중국은 도덕 정신을 주도적인 문화로 간주한다. 따라서 중국의 고대 교육자는 교육목표를 확립할 때, 비록 지육, 미육, 체육, 군사교육을 중시했지만 이 가운데 주요 고려 대상 또는 중점을 덕육에 두었다. 예를 들면 『대학』에 “대학의 도는 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며, 지선에 다다름에 있다”고 했다. Èrchéng도 “상서(庠序)의 가르침은 선왕의 가르침으로 이른바 인륜을 밝히고 천하를 조화롭게 하는데 있다”고 했다(Èrchéngjí, 1980). 이것은 대체로 배양목표에 있어 고대사상가들의 기본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다. 공자가 제시한 교육목표는 자신을 닦아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자신을 닦아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으로서 사(士) 또는 군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인(仁)과 지(智)와 더불어 덕육을 근본으로 할 것을 주장하였다. 공자의 최고 이상은 스스로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백성에게 널리 베풀어 대중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은 덕이 완성된 인격을 통괄하는 것으로 극기복례, 효제, 충서, 다른 사람을 먼저 세우고 다른 사람이 먼저 도달하게 하는 것 등의 내용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경(敬), 지(智), 용(勇), 공(恭), 신(信), 관(寬), 민(敏), 혜(惠) 등 덕목의 총화이다. 공자는 교육을 받은 사람은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어야 한다”고 했다(Lúnyǔ Shùér).

도를 원리 혹은 이상으로 삼은 주희는 이것을 ‘인륜으로서 일상생활에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 비교적 명확한 해석이다. 이것은 뛰어나면서 일상생활과 격리되지 않은 것으로 피교육자가 추구하는 이상 혹은 목표이다. 덕이라는 것은 마음에 있어 도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덕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인의, 효, 제, 충, 서, 예, 악 등의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며, 더불어 그것을 지켜가며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공자는 성현이 되는 최고의 조건을 도덕품격이라고 생각했다. 공자는 네 가지로 정리하여 가르쳤는데, 바로 ‘학문과 행실, 충성과 신의이다’고 했다(Lúnyǔ Shùér). 즉 “먼저 효도를 다하고, 나아가서는 윗사람에게 공순해야 하며, 근신하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이렇게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곧 글을 배우는 것이다”고 했다(Lúnyǔ Xuéér). 즉 첫째가 도덕교육 및 그 실천이고, 둘째는 지식교육이다. 물론 공자도 도덕에 대한 문화지식의 영향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인한 사람은 인에 안주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을 이롭게 여기는 것이다”고 했다(Lúnyǔ Lǐrén).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도덕이 그에게 거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인과 덕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맹자는 교육의 목적은 ‘인륜을 밝히는 것’에 있다고 제시했다. 인륜은 위에서 밝아야 백성이 아래서 친할 것이다”고 했다(Mencius Tēngwèngōngxià). 그는 “하(夏)나라는 ‘교(校), 은나라는 ’서(序)‘, 주나라는 ’상(庠)‘, ’학(學)은 하・은・주나라의 삼대가 같이 썼으니 다 인륜을 밝히는 장소이다. 학교설립 목적은 모두 학생들이 인간관계에 있어 각종 윤리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사회생활 준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맹자는 “인륜으로 가르침에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 있다”고 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씩 실천에 옮겨나가는 것으로 가정, 국가, 나아가 천하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는 교육의 목적은 바로 사람들에게 봉건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도덕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피교육자가 이러한 것을 지킨다면 교육의 목적이 실현되는 것이며, 성공적인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은 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순자는 도덕교육과 정치를 밀접하게 관련시켜 사람과의 관계, 사회질서를 안정시키는 방면에서 교육의 기능을 말하였다. 그는 이러한 토대 위에 자신의 교육목표를 제시하였다. 순자가 말하기를 “경전을 암송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예를 읽는 것에서 마치고, 그 의의를 밝히면 사(士)가 되는 도리에서 시작하여 성인이 되는 도리에서 마친다”고 했다(Xunzi Quànxué). 그는 또 “배움의 방법으로는 예에 이르러 마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을 도덕의 극치라고 한다”고 했다(Xunzi Quànxué). 지식교육은 도덕교육의 기초이며 도덕을 함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교육목적은 바로 사람에게 예를 알게 하고 예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은 춘추전국 이후 유가의 교육사상, 교육목적을 총괄하여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이름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명명덕(明明德)’은 바로 도덕규칙을 설명하고 수립한 것이다. 그 중 주요한 ‘명인륜(明人倫)’, ‘친민(親民)’은 바로 덕치, 인정(仁政)의 정신으로 백성을 감화하고 다스리는 것이며,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지우지선(止于至善)’은 바로 사회 전체가 이상적인 선과 미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것으로 임금은 인에 이르고 신하는 경에 이르며, 자식은 효에 이르고 부모는 자애에 이르며, 인관관계에 있어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이상적인 교육체계로 도덕관념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도덕신념을 세우는 것을 중심으로 도덕을 자각하는 것을 교육의 근본으로 삼고 제가, 치국, 평천하를 실천목표로 해야 한다고 했다.

주희 교육의 목적도 봉건사회의 ‘성인(聖人)’을 양성하는 것이다. 그는 성인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했다. 주희는 당시 학교가 과거급제를 교육의 주요목표로 삼아 벼슬이나 이익을 추구하고 본래의 뜻을 망각하여 부수적인 것을 추구하는 교육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진한(秦漢) 이후, 성학(聖學)이 전수되지 않아 유학자들은 오로지 장구의 훈고만 알지 성인의 뜻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서 대개 성명(性命)의 도덕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zhūwèngōngwènjí Zhōng Yōngjíjiěxù). 이러한 상황은 사회의 풍속을 나쁘게 하고 인재들을 썩히는 것이다. 그는 ‘선왕의 학문은 인륜을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사람을 가르침에 ‘덕행도(德行道)를 실제로 삼을 것’을 말하고(jìnsīlù) 사람들에게 욕망을 저지하고 천리를 보존하도록 하여 자각적으로 도덕강상과 봉건등급 제도의 ‘성인’을 고수하도록 하였다. 주희는 “옛날의 성현(聖賢)이 학문에 뜻을 두도록 사람들을 가르친 까닭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스스로 수양을 하여 남에게까지 미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읽고 외는데 힘쓰고 글 짓는 것을 일삼음으로써 명예와 이익을 좇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báilùdòngshūyuànxuéguī). 주희는 『백록동서원학규』에 교육목적을 명시하였다. 교육의 최종목표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으로 즉 오교를 밝히는 것이다. 배움의 순서는 넓게 배우고, 배운 것을 심도 있게 질문하며, 그것을 심사숙고하여 명확하게 분별하고, 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행하는 공부는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수신의 요지는 “말을 함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 행함에는 공경하고, 노여움과 욕심을 자제하며 나쁜 것을 고쳐 선함을 행하는 것이다”고 했다. 일을 처리하는 요지는 “의를 올바르게 세우고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도리를 명확히 하여 그 공을 계산하지 말라는 것이다”고 했다. 사물을 대하는 요지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며 행함에 이익을 바라지 말고 도리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고 했다. 주희의 이러한 사상은 송대 이후 각 학교의 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상에서 말한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고대교육자는 ‘수기(修己)’에 교육목적을 두고 교육은 모두 덕육을 목표로 삼아 이를 실천하는 것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교육자들이 교육을 행함에 덕을 근본으로 하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이로써 중국 고대의 문화에 있어 덕을 중시하는 정신이 형성되도록 촉진된 것이다.

2. 덕육 중심의 교육과정

중국 고대의 학교는 크게 소학과 대학으로 구분된다. 그 교육내용과 과정에 서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교육자들은 소학에서의 가르침은 사(事, 일상의 일)를 중심으로 하고 대학에서의 가르침은 의(義)를 중심으로 하였다. 이른바 ‘사(事)’와 ‘의(義)’는 기본적으로 도덕의 사요, 도덕의 의이다. 즉 중국의 고대 교육자들이 보편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라는 이상적인 인재양성과정은 도덕 양성을 그 근본과 내용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교육과정 중 소학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목표의 실현 및 교육내용을 행함에 시종일관 도덕교육을 그 내용으로 삼은 것이다.

도덕교육을 인생 전체의 교육과정으로 삼은 것은 공자 가르침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는 자신이 학문으로 다스리고 수양한 경험을 “나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자립하였다. 마흔 살에는 뜻이 흔들리지 않았고, 쉰 살에는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는 들은 것을 모두 순리대로 이해하게 되었고, 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좇아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Lúnyǔ Wéizhèng). 또한 그는 “내가 쉰 살까지 『역경』을 공부한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것이다”고 했다(Lúnyǔ Shùér). 인생은 천지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천지조화의 위대한 힘을 깨달아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정신으로 스스로 도덕적 실천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인간은 자신이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됨의 도리, 즉 고상한 도덕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주희가 말하기를 공자는 이것을 “한편으로는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유유자적하며 오래도록 그 경지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이요, 일탈하여 나아가서는 안 됨을 보여주셨고, 또 한편으로는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진보하여야 할 것이요, 중도에 그만두어서는 안 됨을 보여주신 것이다”고 하였다(Zhūxī Lúnyǔ jízhù). 이것은 교육과정 전체에서 도덕교육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유가의 덕육목표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이며 내성외왕의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성인(聖人)’혹은 ‘인인(仁人)’이라고 부른다. 이들의 교육관점은 ‘성성(成聖, 성을 이루고)’, ‘의인(依仁, 인에 의지하는)’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인간의 본성에 있다는 것이다. 성인의 도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의 존재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도덕교육이 전체교육과정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중용』에서 ‘넓게 배우고 배운 것을 심도 있게 질문하며 그것을 심사숙고하여 명확하게 분별하고 성실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한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 개선해가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Xiόngshílì(1975)는 “천행이 건실하고 우주를 밝혀 생명을 창조함에 있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그치지 않는다. 군자는 자강불식하여 사람에게 있는 하늘의 덕을 밝히되 자력으로 그것을 밝히도록 하여 인간이 그것을 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dújīngshìyào juǎn 3).

『학기』에서 제시한 교육내용과 과정은 “공부한지 1년이 되어서는 학생이 문장을 분석하는 능력과 학습의 뜻을 살피고, 3년이 되어서는 학생이 집중해서 공부하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지를 살피며, 5년이 되어서는 다양하게 익히고 스승과 친밀한지를 살피고, 7년이 되어서는 학생이 학문의 본령을 연구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을 살핀다. 이러한 기준에 서로 부합되었을 때 작은 것을 이루었다고 한다(小成). 9년에 이르러서는 사물에 대해 통달하는지를 살피고 뜻이 확고해서 변화가 없는지를 살핀다. 이러한 기준에 적합하면 큰 것을 이루었다고 한다(大成)”고 했다. 각 단계는 모두 도덕교육과 전문지식이라는 두 가지 방면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특히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개인과 집단 간의 관계를 처리하는 도리를 중시하였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연구는 피교육자에게 ‘군중을 좋아하고(樂群)’, ‘스승을 친애하고(親師)’, ‘벗을 택하는(取友)’ 것으로 사람을 파악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즉 『학기』에서 덕육이 전체 교육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였다. 좋은 도덕품격은 갑자기 깨달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 저급에서 고급으로, 피동적인 것에서 자각적으로 창조하는 발전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Chéngyí(2011)는 “배우는 것에 충실하고, 도덕적으로 숭고해지는 것은 모두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축적되어진 것일 뿐이다”고 했다(Èrchéngjí Zhōuyìchéngshìchuán juǎn 2). “군자의 나아감은 아래로부터 올라가고 은미함으로부터 드러나서 반드시 차례가 있다”고 했다(Èrchéngjí Zhōuyìchéngshìchuán juǎn 2). 도덕교육이 전체교육과정이 되려면 ‘분수를 넘지 않고’, ‘단계를 넘지 않으며’, ‘순서대로 나아가’ 날마다 쌓아서 점점 선의 경지에 도달해야 하는 것이다.

주희는 선진에서 북송에 이르기까지 도덕교육과 관련된 경험 있는 교육자를 종합하여 초보적으로나마 피교육자의 배양과정을 소학과 대학으로 구분하였다. 그는 “옛 사람들은 아이를 가르침에 어려서 효, 제, 성, 경의 실천을 가르쳤다. 조금 커서는 시, 서, 예, 악의 문장을 가르쳤는데, 모두 사물 간에 의리라는 것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실천하도록 한 것이다. 15세가 되어서는 대학에 들어가 물을 뿌리고 마당을 쓸고 응대하여 예, 악, 사, 어를 익혀 이것을 빠짐없이 실천했을 때 작을 것을 이루었다”고 했다(Zhūzǐdàquán, dá wúhuìshūxù). 아이가 어렸을 때 쇄소, 응대, 진퇴로부터 윤리강상, 예교에 이르기까지 아동에게 가르쳐야 하고, 아이가 조금 크면 시, 서, 예, 악의 문장을 가르치며, 아동에게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도록 윤리강상, 예악에 익숙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덕육은 구체적인 활동 중에서 서서히 감화되는 것으로 자존, 자주, 자애, 자강의 품덕을 내포하고 있어 다음 단계 교육의 토대를 다지는 것이다. 대학단계에 이르러서는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도를 가르쳤다”고 하였다(Dàxué zhāngjùxù).

이렇게 해야 비로소 교육을 받는 자는 사람됨의 도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배움의 크고 작음은 원래 서로 다르니 그것을 도로 여길 뿐이다”고 했다(Xuéguīlèibiān). 주희가 세운 교육과정 체계는 송, 원에서 청대까지 정통사상이 되어 남송 이후 관학, 사학, 몽학의 교화계획, 교학내용과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3. 덕육중심의 중국 고대 교육의 내용

교육내용에 관한 역대 교육자들의 사상에는 오랜 중화민족의 역사 속에서 사회 발전에 적합한 지식 내용을 탐색하기 위해 힘썼던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회생산력의 수준과 생산관계의 작용으로 고대 교육자들은 비록 기타 지식교육을 소홀히 하지 않았지만 교재를 편찬할 때 도덕교육의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공자가 육예를 교재로 채택한 시기부터 명청시기까지 중국 문화는 『영락대전(永樂大典)』,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잘 나타나 있다. 몽학교육의 교재로 『삼자경(三字經)』, 『백가성(百家姓)』, 『천자문(千字文)』, 『유학경림(幼學琼林)』에서 유가경전 13경에 이르기까지 비록 지식을 보급시키는 영역은 넓었지만 그 주요내용은 도덕교육이었다.

공자가 편찬한 『시』, 『서』, 『예』, 『악』, 『역』, 『춘추』 등의 육서는 그가 사용한 가장 기본적인 교재로 체계적으로 구성된 교과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중국 고대의 중요한 역사, 문학, 문헌 자료를 포함하고 있지만 공자가 정리하고 사용한 주요 목적은 이 문헌에 공자의 도덕과 정치사상이 담겨있어 이것으로 수기치인의 도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그 나라에 들어가면 그 가르침을 알게 된다. 사람됨이 온유하고 돈후한 것은 『시』의 가르침 때문이다. 정사에 통달하여 멀리 상고의 일을 아는 것은 『서』의 가르침 때문이다. 의리를 알아 광박하고 성정이 온화한 것은 『악』의 가르침이고, 심성이 맑고 의리가 제대로 갖춰진 것은 『역』의 가르침이며, 공경하고 검소하며 엄숙히 삼가는 것은 『예』의 가르침이고, 말을 분석하고 사물을 비교하여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춘추』의 가르침이다”고 하였다(Lǐjì jīngjiě). 외면과 내면의 조화를 잘 이룬 군자가 되려면 육예 교육이 그 토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순자의 『권학(勸學)』편에서 육예를 ‘경’으로 높이기 시작한 후에 육경(六經)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중 『악경』은 이미 소실되어 없어졌고 기타 오경은 중국에서 2,000여 년의 봉건사회에서 줄곧 학교에서 기본적인 교재가 되었다.

『시』는 서주와 동주의 시가를 선집한 것으로 ‘풍(風), 아(雅), 송(松)’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서』는 ‘시가 말하는 의미’를 가리킨다. 공자는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시는 사람의 감흥을 일으켜 줄 수 있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하며, 남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고, 잘못을 깨닫게 하며,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게 하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게 하며, 새, 짐승과 풀, 나무의 이름도 많이 알게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공자가 보기에 시를 배우는 이유는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봉건도덕을 배양하는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했다(Lúnyǔ Wéizhèng).

『상서』는 중국 상고시대의 역사 문헌과 부분적으로 고대 사적을 모아 편찬한 것으로 상나라, 주나라 특히 서주 초기의 중요한 사료이다. 공자가 직접적으로 『서』에 배움을 설명한 곳은 많지 않지만 이 책을 중시했다. 이 책에는 노예제 사회의 도덕과 정치사상에 관한 내용이 있다. 공자는 “『서』에 이르기를 ‘효도하라! 오로지 효도를 하고 형제에게 우애를 다함으로써 그것을 정치에 반영시켜라’고 하였다. 이것도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따로 정치를 할 것이 있겠는가?”고 했는데, 효, 우를 실행하는 도덕교육은 본래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는 의례(儀禮)를 가리킨다. 공자가 선발한 사(士)들이 예제 17편을 배워 편찬한 것이다. 도덕윤리 교육과목 중 공자는 예를 가장 중시하였다. 후세에 유학을 예라고 부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근거에 의한 것이다. 공자는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 없다”고 하고(Lúnyǔ jìshì), “예로써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Lúnyǔ Yánghuò). 그는 예교를 통해 봉건사회의 규범과 도덕규범을 갖춘 사람을 배양하고자 하였다.

『악』은 그 존재 여부에 있어 지금까지 끊임없이 쟁론이 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악경』은 원래 있었지만 진(秦) 멸망 이후 소실되었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본래 『악경』은 없었던 것으로 악의 가락은 『시』에 있는 것이고, 악의 작용은 『예』에 있는 것으로 악의 가락이 악공에 의해 전래된 것으로 생각한다. 『논어』에서 공자는 특히 음악을 좋아한 것으로 보아 그가 악교를 매우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음악의 심미적 가치를 중시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도 매우 중시하였다. 공자는 “소(韶, 순임금의 음악)에 대해 ‘아름다움을 다했고 또 훌륭함도 다했다’고 하고, 무(武, 주 무왕의 음악)에 대하여는 ‘아름다움은 다했으나 훌륭함은 다하지 못하였다’ ”고 했다(Lúnyǔ bāyì). 공자는 예교와 악교를 정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예교와 악교는 정치와 형벌을 다스리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공자는 “예악이 흥성하지 않으면 곧 형벌이 적절하지 않게 되며, 형벌이 적절하지 않으면 곧 백성들은 손발도 제대로 둘 곳이 없게 된다”고 했다. 예의 작용은 행위에 있어 사람을 규범 짓고 악의 작용은 감정에 있어 사람을 도야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악으로 내면을 수양하고 예로 외면을 수양하면 예는 외면을 절제 있게 하고 악은 내면을 충실하게 한다고 한 것이다.

『역』은 『역경』과 『역전』 두 부분으로 나뉜다. 『경』은 고대의 점술에 대한 것으로 내용은 64괘와 384개의 효로 구성되어 있으며, 괘(卦)와 효(爻)에 각각 설명이 있다. 『전』은 『경』에 대한 설명으로 총 7종 10편이다. 『역전』은 대체로 전국시대 말기에 형성된 것이다. 『역』은 유가의 중요한 철학사상을 담고 있으며, 변증법 사상이 풍부하게 담겨있다.

『춘추』는 일종의 편년체 역사책이다. 이것은 춘추시기 노(魯)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춘추』는 시비를 논하는 것으로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에서 역사를 서술할 때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여 ‘예의를 끊어버리고 공허한 문자를 중시한다(Shǐjì)’고 하고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평가했으며, 후세의 왕이 입법을 할 때 도의(道義)에 뜻을 두었는데, 이미 사실을 책에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명의(明義)를 빌려 춘추의 요직을 말하였다. 명의란 간단히 설명하면 등급에 대한 명분제도라고 할 수 있다.

육예는 중국 고대 학술의 총체이다. 공자, 맹자, 순자는 이러한 육예정신을 발굴하고 널리 알렸으며 덕육을 육예교육의 핵심으로 삼아 후세 유학자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한・당 이후, 육예 또는 육경이 십삼 경으로 발전하였으며 『예기』 중 『대학』과 『중용』편을 단독으로 분리하여 교재를 삼기도 했다. 송대에 이르러 주희는 다시 『대학』, 『중용』, 『논어』, 『맹자』를 해석하여 『사서집주』를 완성했는데, 후에 이것은 몇백 년 동안 기본 교재가 되었다. 이러한 책에는 선진유학자들이 덕육을 중시한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중서는 ‘천인감응(天人感應)’ 학설에서 출발하여 사람의 내성(內省)과 직관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명(名)’이라는 것은 바로 ‘진(眞)’이며 이는 명은 천에서 취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명은 우리가 인식하는 진리이며 배우는 대상인 것이다. 이러한 명은 바로 시, 서, 예, 악, 및 봉건도덕을 말한다. 자연에 대한 지식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짐승이라는 것은 성인이 말하려는 바가 아니다. 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의의 이치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중들의 말에 부화하고 사소한 것을 보고 중요하지 않은 말을 하여, 다음 세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하여 군자가 할 일이 아니다”고 하였다(ChunQuiFanLou, zhòngzhèng).

장재는 자연과학지식과 군사지식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교육과정에서 중시한 것은 도덕교육으로 이와 관련된 과목도 중시하였다. 『송사(宋史)』에 “예를 존중하고 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천명을 즐겁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역』을 지식의 기본 대상으로, 『중용』을 그 다음으로 삼고, 『예』를 본체로 삼고 공맹을 최고로 삼는다”고 하였다. 장재는 교육의 목적은 사람의 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고, 배움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본연의 선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습은 바로 성인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는 “학자는 사람의 성을 반드시 바로 해야 한다. 인자는 사람다운 사람이다. 바로 인자를 말하는 것에서 사람이 된다. 학자는 배움에서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Yǔlù zhōng). 이러한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주요한 방법은 예를 배우는 것으로 “예를 지키는 것은 도를 어기지 않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박학을 강조하여 그는 “두루 익히면 학문이 점점 나아져서 넓게 되고 의를 추구하면 점점 정밀해진다”고 하여 박학의 출발점이 의를 밝히는 데 있다고 했다.

주희는 이학 사상을 종합한 사람이다. 그는 송 이후에서 청 중엽까지 봉건통치의 정통사상가와 교육자가 되었다. 그가 편찬한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 『시집전(詩集傳)』, 『소학(小學)』 등은 봉건사회의 정통 교과서가 되었다. 주희는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이라는 오교는 요순이 계(契)로 하여금 사도에게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학자는 이것을 배울 뿐이다”고 하였다. 그는 또 “옛날의 성현(聖賢)이 학문에 뜻을 두도록 사람들을 가르친 까닭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 의리를 설명하고 밝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양이 이루어지면, 그 영향이 다른 사람에게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읽고 외는데 힘쓰고, 글 짓을 것을 일삼음으로써 명예를 구하고 자신의 이익이나 녹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báilùdòngshūyuànxuéguī). 이는 사람됨의 도리를 터득하고 자신을 닦아 남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도리는 모두 경서에 있는 것으로 사람을 가르치는 것과 스스로 학습하는 것은 모두 독서궁리와 선을 실천하는 것에 있음은 논할 여지가 없다.

왕양명은 선험주의를 토대로 봉건도덕의 준칙을 세웠다. 모든 것을 본심에 두고 내심의 수양문제를 교육의 근본문제에 두어 여러 차례 ‘존심(存心)’, ‘진심(盡心)’, ‘명심(明心)’, ‘수기방심(收其放心)’, ‘구기득심(求其得心)’이라는 수양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군자의 배움은 그 마음을 밝히고 그 본심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배우는데 해롭다. 따라서 가려지고 해로운 것을 없애려고 하면 다시 나쁜 것이 밖으로 오는 것이다”고 하였다(Wángwénchénggōngquánshū juǎn7 ).

안원은 청초에 유명한 진보적 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그는 덕(德), 재(才)라는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는 ‘명륜(明倫)으로 배우는 것’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은 ‘소학에서는 쇄소, 응대, 진퇴를 가르치고 대학에서는 격치(格致), 성정(誠正), 수제(修齊), 치평(治平)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다(cúnzhìbiān xuéxiào). 그는 완전한 도덕적 인격, 진정한 재능과 견실한 학문이 있어야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 순, 주공은 모두 견실한 학문을 중시하고 행실을 가르쳐 개인에게 도움이 되고 국가에 유익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는 요, 순, 주공의 도를 살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한 대 이후, 장구(章句), 훈고(訓詁), 청담(淸談) 등 공리공담만 일삼는 교육내용을 반대하고 ‘삼사(三事, 正德, 利用, 厚生), 육부(六府, 金, 木, 水, 火, 土, 穀), 삼물(三物, 六德, 六行, 六藝), 육덕(六德, 智, 仁, 聖, 義, 中, 和), 육행(六行, 孝, 友, 睦, 姻, 任, 恤), 육예(六藝, 禮, 樂, 射, 御, 書, 數)를 교육내용으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그밖에 노동교육과 체육교육을 교육내용으로 삼았다. 안원은 비록 실용기술과 지식을 중시했지만 그가 열거한 교육내용 중 가장 중시한 것은 예이다. 그는 공맹 도의 계승자로 자처하면서 예를 엄숙히 지키고 제자들과 함께 예를 익혔다. 그는 행의 목적을 명륜에 두고 봉건도덕을 배양하는 것을 배우도록 교육내용을 개혁했다.

이상에서 열거한 몇 명의 교육자의 주장 중 주요 교육내용이 덕육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고대교육의 특징이다.

Zhāngdàinián(2012)은 “중국의 고서는 과거에 경(經), 사(史), 자(子), 집(集) 네 종류로 나누었다. 이러한 네 종류의 서적은 모두 윤리사상과 관계가 있다”고 했다(Zhāngdàinián Zhōngguόlúnlǐsīxiǎngyánjiū). 이른바 심연(深淵)과 대해(大海)에 비유한다면 오경은 도의(道義)의 근원이고, 자서는 이것보다 깊은 곳에서 나오는 냇물과 같다는 것이다. 선진시대의 육예에서 청대의 『사고전서』에 이르기까지 도덕 또는 도덕교육의 내용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이것은 중국 고대 문화에서 덕을 중시한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4. 덕육 중심의 지식교육

중국 고대교육의 내용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덕육에 관한 내용이다. 이와 동시에 덕육과는 상대적인 지식교육에도 덕육의 내용이 곳곳에 들어 있어 지식교육에 덕육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덕육이 내재된 지식교육의 효과와 사회적 영향은 덕성으로 결정되며, 도덕적인 인식 없이 지식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이른바 ‘소인(小人)’, ‘소지(小知)’라고 했다. 따라서 유가의 지식론은 덕성을 인지함으로 여겨졌다. 비록 순자, 왕부지와 같은 주지(主知)정신이 강한 사람도 지성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덕성의 인식에 시선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송명이학 이른바 격물치지(格物致知)는 지식을 추구하는 방법이면서 수련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요한 것은 바로 후자이다. 왕양명이 말하는 이른바 지행합일(知行合一)은 개인이 사회에서 도덕실천과 인격완성을 이루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지(知)는 덕성의 지 또는 양지(良知)를 말한다. 재능이 있어도 덕이 없으면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유가는 대부분 인(仁)과 지(智)의 합일을 중시하고 인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 이것은 지(智)가 인 중에서 독립적으로 명확하지 않아 지성의 형태가 덕성의 제약을 받기 때문으로 지(智)의 사회적 효과는 덕의 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개척으로 심성의 자각을 완성하고 더불어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하고 도덕적 행위와 실천을 발전시켜야 한다”(chéngzhōngyīng wénhuàlúnlǐyǔguǎnlǐ)고 한 것은 중국 유학지식의 기본 특징이다. 이러한 관념은 교육내용에 있어 지식, 인간행위의 가치규범이 되었다. 가치를 근본으로 여기고 지식을 지엽적인 것으로,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그다음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육예교육은 중국의 고대학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목에 속한다. 은(殷)나라와 주(周)나라 시대의 예, 악, 사, 어, 서, 수의 육예에서 춘추 이후 『예』, 『악』, 『시』, 『서』, 『역』, 『춘추』의 육예, 오경이 발전하여 십삼 경으로 발전하기까지 도덕교육의 특징은 점점 명확해졌다. 앞서 육예 중 악이 고대의 예술 또는 미육(美育)임을 살펴보았다. 고대의 사람들이 예술을 배우는 것을 중시한 것은 인격이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공자가 ‘모든 것은 악에서 이루어지고’, ‘문은 예악으로 이루어진다’고 하고, 순자가 ‘음악이 행해지면 마음이 맑아진다’고 말한 것은 모두 이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악에 대한 교육 중 유가의 대표 인물은 도덕적 관점에서 항상 음악을 대하고 악을 ‘정성(正聲)’과 ‘음성(淫聲)’, ‘세상을 다스리는 음(治世之音)’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亡國之音)’으로 구분하며 교육자는 덕음(德音)으로 교화하고 ‘음성(淫聲)’, ‘익음(溺音)’을 배척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음악지식교육에도 도덕교육 내용을 포함시켰다.

역사교육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양계초는 일찍이 “중국 고대를 알려면 역사를 제외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인류 지식의 근원은 사(史)에 있다”고 했다.(Liάngqīchōo, Zhōngguólìshǐ] yánjiūfǎ) 중국 고대의 교육자는 모두 역사교육을 중시했는데, 특히 명청 이후 왕양명, Zhāngxuéchéng (1738~1801)은 “육경은 모두 역사이다”고 말한 후, 중국 고대교육에서 사학교육이 점점 중요해졌다. 경사를 두루 아는 것은 유학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학술 수양이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것은 역대 교육자는 교육을 받는 사람들에게 역사 지식을 전수한 것이 아니라 역사 지식교육의 도덕적 의의를 중시하였다. Sīmǎqiān(B.C. 145~B.C. 86)은 『춘추』를 짓는 의도를 “공자는 ‘나는 이것을 추상적인 말로 적으려고 했으나, 구체적인 사적(事蹟)으로 표현하는 쪽이 더 절실하고 명백하다’고 했다. 『춘추』는 위로는 삼왕(三王; 夏, 殷, 周)의 도를 분명히 하고, 아래로는 인사(人事)의 기강을 변론하여 의심이 생기는 곳을 해결하고 시비를 밝히며,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을 결정하여 선을 선이라 하고, 악을 악이라 하며, 현(賢)을 현이라 하여 불초(不肖)를 천하게 만들며, 망해서는 안 될 나라가 망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끊어져서는 안 될 집안이 끊어진 것을 다시 잇게 하며, 바른 것이면서 없어진 것을 보완하여 일으켰으니, 이는 왕도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고 하였다(Sīmǎqiān Shǐjì Tàishǐgōngzìxù). 사마천은 『사기』에서 24사(史)『춘추』, 사마광의 『자치통감(自治通監)』, 주희의『자치통감강목(自治通監綱目』, 왕부지의 『독통감론(讀通監論)』, Gùyánwǔ(1613~1682)의 『천하군국이병서(天下君國利病書)』, 장학성의 『문사통의(文史通義)』를 가장 중시했고, 『춘추』의 “선을 선이라 하고 악을 악이라 하며, 현(賢)을 현이라 하여 불초(不肖)를 천하게 만든다”는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 도덕판단과 역사판단의 상호 관계 원칙에 따라 도덕 지식을 역사 지식에 적용시켰다. 황종희는 “배움에 있어 반드시 경술을 근본으로 해야 어긋나지 않게 된다. 사적(史籍)의 증거를 밝힌 후,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Míngrúxuéàn).

문자, 생활 기본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주요한 목적인 몽학교재를 예로 삼으면, 『삼자경(三字經)』, 『유림수지(幼林須知)』, 『천자문(千字文)』, 『명물몽구(名物蒙求)』 등은 모두 지식교육과 덕육의 유기적 결합을 중시했다. 예를 들면, 『삼자경』은 봉건윤리도덕 교육의 강령 즉 삼강과 오상으로 질서를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책의 내용이 매우 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중국 고대 교육을 종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뜻은 도에 있고’, ‘뜻은 인에 있으며’, ‘배움이라는 것은 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상 아래 지식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기질(氣質)을 변화시켜 인격을 도야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주희는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아랫사람에게도 배워 발전하고 점진적으로 순서에 맞게 가르쳤다. 이에 따르면 넓게 알고도 그것을 집약할 수 있으며, 하나가 아니고, 뜻을 가볍게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와 반대다. 고자는 환상에 빠져있고, 비자는 견문에만 빠져있어, 갈팡질팡하여 돌아가야 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Zhūzǐgōngwénjí juǎn53 dáShěnyòukāi). 그는 당시 학교교육이 “본질을 버리고 부수적인 것을 좇으며, 이를 추구하고 의를 버린다”, “옳고, 훈고하고, 글을 짓지 못하며 명성을 추구하고 이익을 챙긴다”(Zhènjiāngfǔxuéjì), “덕행과 도예(道藝)가 없다”고 비판했다(Xuéxiàogòngjǔsīyì). 지식교육에 있는 덕육교육 내용에는 긍정적인 면과 합리적인 것이 있다. 당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봉건 교육이 봉건 도덕을 지키는 사람을 배양한 것은 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이며, 교육 기능의 주요 요소이다. 그러나 단일한 도덕교육은 수백 년 동안 중국에서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낙후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 ‘쓸모없는 지식’ 심지어 모든 지식은 덕성함양을 방해하는 것으로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중국 고대 특히 송명 이후의 교육에 심각한 폐단이 되었다.

5. 도덕교육이 지향하는 교사의 역할

교사는 인류사회가 축적한 문화 지식, 사상, 행위규범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고, 그들 세대의 사업을 다음 세대들이 계승하도록 하여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정에 있어 교사의 주요 역할은 교육내용을 선택하고, 교육사상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Lenin( 1879~1924)은 일찍이 “어떠한 학교에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에서 정치사상의 방향이다. 이러한 방향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전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다(Lièníngquánjí dì15juǎn). 이것은 중국의 전통교육 중 확고부동한 교육철학이다.

중국의 역대 통치자들은 교육의 정치 방향을 결정하는데 있어 교사의 작용을 매우 중시하였다. 따라서 관학의 교사는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되고 교육내용도 엄선하여 편찬하였다. 사학뿐만 아니라 관학에서도 교사를 구속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이것으로 교육의 내용이 통치계급의 이익과 요구에 부합하도록 하였다.

고대 교육자들이 도덕교육에 있어 교사에게 제시한 요구는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도를 전하는 것이다(傳道). 둘째, 교사로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순자는 교사는 예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교사의 주요 직책은 “예를 바로잡는 것이다”고 하였으며 “정서가 예 쪽으로 안정되고 지혜가 스승과 똑같아지면 이러한 사람이 성인이다”고 하였다(Xunzi Xiūshēn). “교사는 한 지역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한 지역의 리더가 된 후 국가의 임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임금이 되는 것과 같이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한 “스승을 존경할 줄 안 후 도를 존경할 줄 알아야 백성이 배움을 존경할 줄 안다”고 했다. 이것은 스승을 존경하고 도를 중시하는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한유는 교사는 도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여 “도가 있는 곳에 교사가 있다”고 하였다(Hányù shīshuō). 이것은 도가 없으면 교사가 될 수 없고, 교사가 없으면 그 도를 배울 방법이 없으며,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도를 중시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도를 전하는 것’을 교사의 삼대 책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교육자들이 교사란, 교육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와 비교하여 고대 교육자에 대해 설명이 가장 많은 부분은 교사는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과 관련이 있다. 교사가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사람들에게 감화작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덕교육의 기능이 바로 교사에게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교육자는 지식이 깊고 넓으며 풍부한 경험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상한 도덕적인 품격과 인격이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말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정(政)이란 정(正)의 뜻이다. 선생이 올바르게 이끈다면 누가 감히 올바르지 않겠는가?”(Lúnyǔ yányuān), “그 자신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행하고, 그 자신이 올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하여도 따르지 않는다”, “그 자신이 올바르지 못한데 어찌 남을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Lúnyǔ zǐlù). 이 말은 대부분 권력자에 대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교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덕육에 있어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철학적 의미를 나타낸 것이다.

동중서는 “좋은 교사란 도(道)를 잘 따르면서 그 행실에도 신실함이 있어야 한다”, “교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ChunQuiFanLou, zhòngzhèng), 여기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도덕교육 과정에서 본보기 작용을 하는 것이다. Yángxióng(B.C.53~B.C.18)도 “교사란, 다른 사람의 본보기이다”, “배우는 것에 힘쓰는 것은 바른 교사를 찾는 것에 힘쓰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Fǎyán xuéxíng).

주희는 명예를 추구하는 교사, 단지 과거 시문만 할 줄 아는 교사를 반대하고, 반드시 도예(道藝)를 행할 것, 꾸준히 남을 교화할 수 있는 정신을 발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왕부지는 교사는 고상한 도덕적 품격, 훌륭한 품행을 갖추고 더불어 그 자신이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는 교사의 실천(躬行)을 중시하였다. 그는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고 실천으로 그것을 다지며, 가르침에는 의가 있어야 하며, 도를 바르게 하여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한다”고 했다(Sìshūxùnyì juǎn32).

위 교육자들의 주장에서 교사는 학생을 계발하고, 가르치는 내용을 직접 실천하며 그 바탕으로 의와 도를 끊임없이 바르게 닦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6. 국가가 중시한 도덕교육

중국 교육사에 있어 도덕교육을 가장 중시한 것은 국가에서 각종 정책을 펴고 장려한 것과 관련이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재의 반포이다. 현대교육 중 교육내용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교육과정 개설문제이다. 교육과정의 편성은 다양한 교육목표, 규정된 교과목 및 그 목적, 내용, 범주, 분량과 과정 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교육과정 편성은 각 교육내용의 계획을 보다 체계화한 것이다. 적어도 선진시대에 이미 교육과정 편성의 초기적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학기』에 중국 고대에 행해졌던 1차 년에서 9차 년까지의 학습 내용과 순서가 기재되어 있다. 후에 많은 시대에 걸쳐 관학에서도 비교적 체계적인 교육계획이 있었다. 관학은 정부에서 직접 설립한 학교이다. 그래서 교육과정 편성에 대해 규제가 엄격한 반면에 사학에서의 규제는 비교적 엄격하지 않았다.

교사는 정부에서 지정해준 교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통치가 비교적 엄격한 시기에는 관학뿐만 아니라 사학에서도 대부분 통치계급의 의도에 따랐다. 예를 들면 진나라 시대에는 매우 강력한 정책으로 인해 교육내용이 통일되었다. 당시 ‘협서령(挾書令)의 공포’, ‘사학의 금지’, ‘관리를 스승으로 삼도록 하는 조치’가 있었다. Hànwǔdì (B.C. 142~B.C. 87)시기부터 ‘유학의 학술만을 숭상하자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의 정책 이후 선진 유학파들이 사용한 교재는 『시』, 『서』, 『예』, 『역』, 『춘추』 등이었으며 경전으로 숭상했다. 당시 이들은 관학의 필독서였으며 사회적으로도 널리 보급했다. 한대는 경학을 치국의 방침으로 삼아 오경박사를 설치하였다. 그래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경전을 읽고 연구해야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또한 한대에는 ‘효로서 나라를 다스리자’고 제창하여 오경 외에 『논어』, 『효경』을 더해 ‘칠경(七經)’이라 불렀다. 동한 때 『백호통의(白虎通義)』는 경학의 모범답안과 같았으며 봉건적인 삼강, 육기(六紀)의 법전이었다. 이후 거의 모든 시대 교재를 심의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사상이 통일되는 계기가 되었다. 통치자들은 자신의 이익에서 출발하여 자신이 장기간 편안하게 통치하기 위해 봉건윤리강상을 교재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되도록 하였다.

당대에는 『역』, 『시』, 『서』, 『의례(儀禮)』, 『주례(周禮)』, 『예기(禮記)』, 『좌전(左傳)』, 『공양전(公羊傳)』, 『곡량전(谷梁傳)』을 합쳐 ‘구경’이라고 했다. 더불어 구경으로 사(士)를 뽑도록 명백히 규정하였다. 당 문종 태화(太和)년 간에 다시 『논어』, 『효경』, 『이아(爾雅)』를 합쳐 ‘십이경’이 되었다. 송대에 또 『맹자』를 더해 ‘십삼경’이 되었다. 주희는 『예기』 중 『대학』, 『중용』을 취하고 『논어』, 『맹자』를 더해 ‘사서’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중국 고대의 교재는 기본적으로 청말까지 정형화되었다.

둘째, 찰거(察擧)와 과거이다. 이것은 봉건통치자가 인재를 선발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봉건교육이 발전하도록 이끌었다. 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은 주로 교육내용으로 결정하였다. 봉건통치자는 찰거와 과거 등의 수단을 통해 사람들에게 봉건윤리도덕을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을 배우도록 하였다.

이러한 찰거로 사를 뽑는 제도는 한대에 성행하였다. 그 주요과목은 효렴(孝廉), 무재(茂材), 현량방정(賢良方正), 문학(文學), 명경(明經), 명법(明法) 등이다. 찰거는 비록 덕재(德才)를 겸비한 사를 뽑는 것이지만 실제로 덕을 중시하고 재는 경시하였다. 전한 시대에 나온 효렴은 시험을 보지 않고 관직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후에 점점 시험이 추가되면서 찰거를 한 후, 각급 부서에서 시험을 보았다. 시험의 내용은 치국방침 외에 오경과 같은 권위 있는 교재의 내용이었다. 이것은 자연히 관학과 사학의 교육과정 편성에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학교는 윤리지식의 전수, 도덕품성의 양성을 가장 중요한 내용으로 삼았다.

수당 이후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가 폐지된 후, 과거제도가 생겼는데, 이는 인재를 선발하는 주요 방법이 되어 청말까지 약 13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과거제도는 학교교육의 목표와 내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과거제도의 시행 이후, 학교의 교육목표는 과거를 준비하는 것이 되었고, 과거시험의 내용이 학교교육의 내용이 되었다. 예를 들어 당대의 과거는 구경으로 시험을 보았다. 따라서 국자학(國子學), 태학(太學)과 사문학(四門學)의 교육계획은 과거시험 과목인 구경에 의해 사를 뽑는 요구에 맞게 계획되었다. 경서를 대, 중, 소 세 부류로 나누어 반드시 대경, 소경 각각 하나 또는 중경을 통과하고, 대・중・소경 중 각각 삼경을 통과하고 오경을 통과하려면 반드시 대경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효경』, 『논어』는 공통 필수 과목이었다. 당시 봉건윤리사상의 경서를 전파하는 것을 교육의 주요 내용으로 하고 교육과정 중 도덕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Ⅲ. 결 론

공자는 성현이 되는 최고의 조건은 도덕품격이라고 생각했다. 교육의 목적은 바로 사람들에게 봉건 도덕이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식교육은 도덕교육의 기초이며 도덕을 함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고대 중국의 교육목적은 바로 사람에게 예를 알게 하고 예를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이상적인 인재양성과정은 도덕양성을 근본으로 삼고 그 내용으로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상은 교육과정 중 소학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교육목표의 실현 및 교육내용을 행함에 시종일관 도덕교육을 그 내용으로 삼은 것에서 잘 드러난다. 성인의 도는 언제 어디서든 인간의 존재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스스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도덕교육이 전체교육과정의 내용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이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고대 중국의 교육자들은 비록 지식교육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교재를 편찬할 때 도덕교육의 내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유학자의 덕육에 대한 관념은 교육내용에 있어 지식, 인간행위의 가치규범의 준거가 되었다. 덕육을 근본으로 삼고 지식을 지엽적인 것으로, 덕육의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지식을 그다음으로, 도덕의 내용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았다. 비록 지식과 학문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지만 덕육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지식교육에 있는 덕육교육 내용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당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봉건교육이 봉건도덕을 지키는 사람을 배양하여 원활한 국가통치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교육의 긍정적인 측면이다. 그러나 도덕중심의 교육과정과 내용은 수백 년 동안 중국에서 자연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낙후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쓸모없는 지식’으로 폄하 하거나 심지어 지식은 덕성 함양을 방해하는 것으로 배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송명 이후의 교육에 심각한 폐단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위정자들의 교육을 통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나 덕육 중심의 교육체계는 요즘의 시각에서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높이 평가할 만한 내용이다.

중국 고대 교육자들의 주장에서 교사는 학생을 계발하고 의와 도를 끊임없이 바르게 닦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봉건윤리사상의 경서전파를 교육의 주요 내용으로 하고 교육과정 중 도덕교육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현대의 교육자들은 경쟁위주, 성과위주의 환경에 내몰려 있어 사람 중심의 의와 도의 교육에 소홀한 점이 있다. 빠르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사회에서 덕육의 강조로 인한 덕성의 올바른 정립은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고 희망과 미래가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학교에서 교수나 교사의 역할은 촉진자, 안내자의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교사는 안내자, 촉진자를 넘어서서 학생들의 미래 삶을 밝힐 수 있는 인성(도덕)교육에 앞장서야 하므로 교사 스스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의 방법으로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질문으로 끝나는 중국 고대 교육체계가 미래 지향적인 교육체계로 재평가될 만한 가치가 있으며 지금의 교육체계 못지않다는 사실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A education system of chinese anc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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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hūzǐdàquán, dá wúhuìshūxù
  • Zhūzǐgōngwénjí juǎn53 dáShěnyòukāi

<Table 1>

A education system of chinese ancient

Division Contents Educators
Source: Researcher writing, 2019.
Educational goal virtue raising Confucius, Mencius, Zhūxī
Curriculum Daily routine and rightness Confucius, Èrchéng, Zhūxī
Educational contents Six basic literacy Confucius, Mencius, XunZi
Knowledge education centered on virtue Virtuous Practice and Personality Completion wángfūzhī, Wángyángming, Zhāngxuéchéng
Role of Teachers in virtuous Education A Practice on the Conduct of Taoism and the Model of Teacher Confucius, Dǒngzhòngshū, Yáng Xióng
Virtuous education that the state values Making Textbooks and Selection of Human resource Confucius, Hànwǔdì, Bāng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