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진미학 발생의 역사적 배경 연구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look at the conditions for the development of before the qin dynasty aesthetics by studying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before the qin dynasty aesthetics. The ancient slave society of China created a splendid Zhou dynasty culture by protecting and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productive forces and preserving some excellent traditional customs of the clan community. The emergence of aesthetics and artistic activities in the ancient times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consciousness of the value and dignity that goes beyond the satisfaction of animal desires by human beings themselves. Before the qin dynasty aesthetics was developed according to the rise of rationalism. Standing in the position of Confucianism and simultaneously absorbing the point of view of Taoism, 『Yizhuan』 connects the heavens and people with each other through the confrontation and unity of yin and yang. The concept of the universe, which contains nothing that is not included in yin and yang, was constructed. Based on this, the problem of the form of beauty and the law of beauty is being investigated considerably. Taken together, the spring and autumn period presented two main viewpoints. The research method was utilized by analyzing the old literature. Before the qin dynasty aesthetics shows very clearly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roblem of beauty and art and the problem of human nature.
Keywords:
Before the qin dynasty aesthetics, Historical background, Conditions for the developmentⅠ. 서 론
중국 고대 미학의 기초는 선진 시기(先秦時明)에 세워졌다. 선진 시기는 일반적으로 춘추전국시대를 가리킨다. 이 시기의 미학은 원시무술 종교의 관념 전통에서 벗어나 이성주의의 경향을 띄고 있다. 특히, 유가나 도가 두 학파의 미학은 상호 대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며, 수 천 년 동안 중국 미학에 영향을 끼쳐 왔다. 후세의 각종 미학 사상의 발생은 위로는 선진 시기까지 소급할 수 있다. 사실상 선진미학, 특히 유가나 도가 두 학파의 미학은 특정 역사 조건 하에서 확대되고 풍부해지면서 심화, 발전되었다. 그러므로 선진미학을 분석하지 않고서는 중국 고대 미학 전체의 변화, 발전 및 중국 고대 미학의 내용과 특징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선진미학은 매우 복잡한 역사적 배경에서 발생되었다. 본 연구는 이들 배경에서 나타난 조건에 대해서 분석을 하였다.
연구의 목적은 이들 분석을 통해서 나타난 조건이 현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를 탐색해 보는데 있다.
Ⅱ. 연구 방법
1. 연구 대상
연구 대상은 선진사회와 선진미학의 관계, 선진예술과 선진미학의 관계, 선진철학과 선진미학의 관계를 분석하여 역사적 배경을 통하여 미학 발생의 조건을 연구하는 것이다.
2. 연구 방법
연구 방법은 중국 선진사회에 나타난 미학과 관련된 정치, 경제, 사회, 철학, 미학과 관련된 고문헌을 분석하고, 미학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발생 조건을 살펴서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인식해 보고 이해하는 데 있다.
Ⅲ. 연구 결과
1. 선진사회와 선진미학
선진미학이 발전하는 시기는 주로 춘추 후기로부터 전국 시기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 시기는 중국 역사상 초기 노예제 사회로부터 후기 노예제 사회로 이행되어 가는 과도기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 이전의 상(商)나라 때에는 초기 노예제 사회의 기초를 마련하고 나서 그것을 차츰 굳건히 다져 가려 하고 있었다(Lee, 2007). 물론 당시에 노예제 사회가 형성되기는 했다고 하지만, 원시 씨족 사회의 전통적 풍습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었다.
판원란(范文瀾)은 “상나라 때의 생산력은 결코 높지 않았기 때문에 생산 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촉진시킬 수 없었다. 게다가 예로부터 전해 오던 공동체 제도를 해체시키는 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었다. 노예 제도는 결코 원시 공동체의 외피를 타파할 수 없었다(Zhou, 2014)”라고 하였다. 이는 중국 고대 노예제 사회의 발전 및 특징을 정확히 파악한 견해이다.
노예주 계급이 인민을 지극히 잔악하게 착취하고 압박하였기 때문에, 상나라는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상을 계승하여 세워진 주(周)의 통치자들은 인민의 반항적인 힘을 보고서 자극을 받아 원시 씨족 공동체의 전통과 풍습을 이용하여 계급 모순을 완화함으로써 노예주 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즉, 체계적인 종법 제도를 만들어 ‘주례(周禮)’를 크게 성행시켰던 것이다(Joe, 2010). 이러한 조치는 중국 고대 노예제 사회의 생산력 발전이 씨족 공동체를 아직 철저히 타파하지 못한 그러한 일련의 상황에 맞추어 생산력의 발전을 보호, 촉진시키고, 씨족 공동체의 몇몇 우수한 전통 풍습을 보존함으로써 찬란한 주대(周代))의 문화를 창조해 냈다. 이러한 문화는 노예주 계급의 통치를 더욱 원활하게 해 주었다(Joe, 2010). 그렇지만 동시에 원시 씨족 사회 속의 자연 발생적인 몇몇 민주적이고 인도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통치 계급은 더 이상 상나라의 그러한 야만적인 통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고, 사상적으로도 고대 이성주의의 서광이 비쳤다. 그래서 우매하게 귀신을 숭배하고 잔악하게 인민을 부려먹는 것으로부터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보호한다(敬天保民)’는 주장으로 바뀌었고, 후세는 백성을 신 위에 놓고서 백성을 ‘신의 주인’으로 여겼다(An, 2010). 이는 중국 고대 사상의 발전에 있어서 의심할 바 없이 하나의 커다란 해방이다. 선진미학은 이러한 이성주의 사조의 고조에 따라 발전된 것이다.
상고 시대의 토템 무속 활동과는 다른 심미와 예술 활동의 발생은, 인류 스스로 동물적 욕망의 만족을 뛰어넘은 가치와 존엄에 대한 의식과 분리될 수 없다. 주대 이성주의 사조의 발흥은 바로 이러한 의식이 낳은 분명한 표현이다(Jang, 2022). 이는 상나라 시대 이래의 농업과 청동 제조로 대표되는 수공업의 커다란 발전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역량이 현저하게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주대 노예주 계급이 씨족 사회의 전통을 이용하여 노예주 계급을 옹호하는 통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고대 노예 사회가 씨족 사회 전통의 속박을 철저히 타파하고, 그것은 결국 주대 노예 사회가 상대 노예주의의 극도로 잔혹하고 야만적인 통치 방식을 탈피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원시 씨족 사회의 전통 중에서 민주와 인도의 정신을 부분적으로 계승했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개선했다(Jang, 2022). 이러한 긍정 속에 설사 노예제도를 유지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진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씨족 혈연 관계에 따라 조직된 주대 노예 사회 중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정치·경제상의 통치와 복종 관계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동시에 씨족 혈연과 관련된 윤리·도덕상의 정감(情感) 관계이다(An, 2010). 아울러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는 곧 정치·경제상의 통치와 복종의 관계에 대한 모순인 동시에 씨족 혈연 관계와 관련된 윤리·도덕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정치·경제상의 조치가 만일 씨족 혈연 관계와 관련된 윤리·도덕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질책과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윤리·도덕 원칙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이러한 관계를 처리하는 최고 표준이 되어서 극히 주요한 의의를 지니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윤리·도덕 관계에 대한 강조는 동시에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이성의 의의와 가치를 강조한 것이며, 아울러 개체와 사회는 마땅히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긍정한 것이다. 왜냐하면, 씨족 혈연 관계와 관련된 윤리·도덕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요구는 인간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멀고 가까움, 귀하고 천함(遠近貴賤)’이라는 등급상의 엄격한 구분이 존재하기에, 사랑에도 차등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랑 그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계급 투쟁이 존재하던 중국 고대 노예 사회에서는 참으로 불가능했지만, 그것은 결국 특정 사회의 역사적 조건 하에서 발생된 객관적 요구로서, 오랜 기간 동안 인간들에 의해 공인된 것이다. 결코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만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황당한 말이 아니다. 이러한 도덕을 제창한 공자 등을 단순히 일방적 주장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의식이 결여된 편협한 생각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주대에 이르러 완성된 중국 초기 노예제 사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상나라 때 신(神)을 무조건적으로 경외하고 숭배하던 것이 기본적으로 이미 부정되었다. 그리고 인간의 지위, 인간과 자연의 통일이 비로소 긍정을 얻기 시작하여, 더이상 신이 인간을 지배하고 위협하는 신비한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 사회와 국가 전체는 의식적이고 자각적으로 씨족 혈연 관계를 바탕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윤리·도덕은 사회 생활 중에서 중대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 씨족 혈연에 기초한 관념은 개체와 사회의 관계를 서로 배타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으로 통일된 것이라고 인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종의 조화로운 관계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셋째, 노예주의 계급 통치와 일체를 이룬 씨족 혈연 관계는 대단히 협소한 성질과 엄격한 등급 구분을 지니고 있어서, 개인의 발전을 제한하여 좁고 폐쇄적인 시간과 공간의 환경과 사회 관계 속에서 운명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할 뿐이다.
이상에서 논술하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은 선진미학 및 이후 중국 고대 미학 전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는 선진미학이 처음부터 인간과 자연, 개체와 사회의 통일을 자신의 전제로 삼게 하였고, 이러한 통일(和) 속에서 미를 찾게 하였다(Jang, 2022). 아울러 미와 예술의 윤리·도덕과 선(善)과의 관계 문제를 최우선으로 삼아, 이로부터 중국 고대 미학의 여러 가지 주요한 특성과 장점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지만 고대 씨족 혈연 관계의 협소성은 또 중국 고대 미학의 몇몇 주요한 약점을 낳았다.
서주에서 소위 대봉건(大封建), 즉 혈연 관계에 기초한 종법 제도를 건립한 이후, 중국 초기 노예제 사회는 원시적인 엉성한 상태를 벗어나 고도의 문명을 지닌 번영 시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동주 후기에 이르러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특히 춘추 시대 말엽에 철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됨에 따라, 본래 신분이라는 등급상의 구분과 연관되어 있던 빈부의 구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귀한 자는 가난해지고, 가난한 자는 부귀해지는 현상이 대량으로 출현하여, 원시 종법 제도 가운데 신분제도의 구분이 근본적으로 동요되었다(Joe, 2015). 그리하여 통치자 가운데는 이러한 신분제도의 구분을 고려하거나, 수단을 가리지 않고 서로 투쟁하는 현상이 날로 심해져 갔다.
종법 제도라는 형식으로 조직된 초기 노예제는 생산력의 발전과 걸맞지 않았다. 그리하여 때로는 사유 재산의 획득 및 누적을 금하고,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신분제도의 구분을 영원히 유지하도록 했고, 때로는 이러한 구분을 타파함으로써 충분히 재산을 획득하고 누적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는 신성한 신분제도의 구분을 고려하지 않고 후자의 경우로 발전하였다.
전국 시대에 여러 차례 반복되는 격렬한 투쟁을 거치면서 종법 제도 형식으로 조직된 초기 노예제는 마침내 와해되었다(Lee, 1997). 최후로 진(秦) 왕조가 6국을 통일하고 초기 노예제로부터 후기 노예제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후기 노예제는 종법 제도라는 조직 형식을 포기하고, 각 노예주로 하여금 종족 관계의 속박을 받지 않는 사유 재산 소유자가 되게 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기초 위에 집중적으로 통일을 이룬 강대한 노예주 국가로 거듭 조직되었다(Lee, 2020).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추앙되었던 초기 노예제의 와해, 사회 관계의 급격한 변화 및 노예주 계급 중에 종족 관계의 속박을 받지 않는 신흥 세력의 출현과 나날이 강대해 가는 현상이 모두 사상면에 반영되어 백가쟁명의 국면이 출현하였다(Jang, 2022). 이러한 쟁명 가운데 미학 방면에서 참으로 중대한 가치를 지닌 사상이 제기되었는데 얼핏 보아 과거 지향적인 유가와 도가였다. 신흥 세력의 후기 노예주는 부와 권력을 어떻게 빨리, 그리고 많이 점유하고 탈취하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심미나 예술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론 심미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주로 그것을 진정한 향락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향락 이외에 심미나 예술이 지니고 있는 주요한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그들은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Jang, 2022). 더욱이, 그들은 심미와 예술 활동에 의거해서는 그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권력을 얻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 그와 상반되게 그들은 일체의 생사를 건 투쟁도 불구하고, 가장 잔인하고 음험하고 염치없는 방법을 동원해야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일체의 것을 획득할 수 있다고 깊이 믿고 있었다(Jang, 2022).
당시의 역사 조건 하에서 이러한 신흥 세력을 형성한 인물은 절대 다수가 공리에 급급하며 야심에 넘치고, 잔인하고 음흉하며 교활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초기 노예제의 반역자로서 역사의 발전을 촉진하는 데 유력한 작용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심미나 예술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으며, 더욱이 이론상 주요한 가치를 가진 미학 사상을 제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들의 미학관은 그들의 가장 급진적인 대변인인 한비의 사상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Kim, 2005). 이러한 미학관은 개별적으로 취할 만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심미와 예술에 대해 멸시와 부정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묵자는 소규모 생산자의 대변인으로서 통치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비판을 했으나, 소규모 생산자 특유의 극단적인 편협성 때문에 사회 생활 속에서 심미와 예술의 역할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Joung, 2012). 묵가나 법가와 상호 대립적인 유가, 특히 공자와 맹자는 초기 노예제를 옹호하는 입장에 서서 서주 노예제 사회의 번영에 대해 매우 그리워하고 동경하고 있었다. 역사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역사 발전의 조류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유가가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것은, 주로 씨족 혈연 관계와 결부된 서주 노예제 사회의 번영 시기에 나타난 고대 민주와 인도의 정신이다(Lee, 1996). 이러한 정신은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춘추시대 이래 날로 기세 등등해지고, 일체를 석권했던 권세와 부귀에 대한 탐욕스런 추구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아무리 이러한 추구가 그 역사적 필연성의 진보적 작용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고대 민주와 인도 정신에 대한 위반이며 도덕적 타락이다. 따라서, 유가의 고대 민주와 인도 정신에 대한 강렬한 칭송과, “인(仁)이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Kim, 2006).”라는 말에 대한 계속적인 전파 및 개체 인격의 완성에 대한 고도의 추앙 등은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가는 고대 민주와 인도의 정신을 충분히 인정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유가 사상 전체를 꿰뚫고 있는 근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가는 사회 생활 속에서 예술과 심미의 작용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주대 문화의 찬란한 업적을 계승한 바탕 위에 유가는 비교적 체계적인 미학 사상을 제시했고, 아울러 후세에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Peng, 2004). 고대 인도주의는 유가 미학의 생명이기 때문에, 인류 역사의 발전 속에서 어떠한 난관을 겪더라도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사회 가치가 되었다. 따라서, 유가의 미학도 부정할 수가 없다. 유가에 대한 법가의 맹렬한 비판이 끝내 유가 사상을 역사상에서 소멸시킬 수 없었던 것은 하나의 선명한 증명이 된다.
유가와 상호 대립적인 도가는 북방에 비해 낙후되어 있고, 더 많은 원시 씨족 사회의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남방에서 주로 성행하였다(Han, 2017). 그들은 대개 몰락한 씨족 귀족의 대표이며, 그 문화적 연원은 북방 사관의 문화와 다른 무관(巫官) 문화에서 나왔다(Min, 2009). 유가와 비교해 볼 때 그들이 동경하는 것은 서주의 노예제 사회가 아니라, 더욱 먼 옛날의 원시 씨족 사회이다. 이렇게 볼 때, 유가에 비해 도가가 시대흐름에 부합하지 못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러한 그리움과 동경이 발생된 것은 노예제 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각종 죄악이 나타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잔인한 싸움이 벌어졌으며, 인간이 권세·욕망의 노예와 희생물이 되었으며, 거짓되고 염치없는 행위가 그칠 줄 모르는 당시의 사회 현상을 도가가 목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가가 추앙하는 서주 노예제 사회를 포함한 이른바 문명사회 전체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전개하였다. 특히 장자가 강조한 것은 자연의 미와 예술의 독립이다. 낭만적이고 구속받지 않는 형상의 상상, 자연과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아끼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비판의 심각한 의의는 인류가 계급 사회로 진입한 이후의 소외 현상을 폭로했다는 점에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소외 현상에 대한 비판은 결코 도가로 하여금 인간 생명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치닫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가(특히 장자 학파)는 인간의 생명을 열렬히 사랑했고, 또 개체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고자 했다(Lim et al., 2019). 그렇기 때문에 도가는 역사상의 심미와 예술 활동을 인류가 계급 사회로 진입한 뒤의 여러 가지 소외 현상의 일부분으로 삼아 비판을 가했다. 그러나 본질면에서 볼 때, 초공리를 주장하고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도가는 심미와 예술 활동의 내용에 대해서는 유가에 비해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하고 있었다. 선진미학사상 가운데 도가만이 유일하게 유가와 대항할 만한 미학을 제시하였으며, 후세에 매우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선진미학은 춘추 전국 시기 사회 변혁의 산물이다(Kim, 2006). 그렇지만 위의 분석으로 볼 때, 만일 이 시기에 중대한 가치와 진보적 의의를 지닌 미학 사상만이 당시 변혁을 요구하는 후기 노예주의 사상을 반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면, 그것은 복잡한 역사적 상황을 단순화한 것이다. 사실상, 변혁을 요구하는 후기 노예주는 당시에 아직 중대한 가치를 가진 미학 사상을 제시할 조건을 구비하고 있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상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대 문화적 업적을 중시하고 계승하면서 공리 욕망의 만족을 인류 생존의 최고 목표로 삼는 사상가를 반대하였다. 설사 이들 사상가들이 보수적 사회 집단의 편에 서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반대하였다. 그러므로 이들 사상가들이 미학상 제기된 사상을 주장한 것은, 실로 당시 사회 투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동시에 태고 이래 중화 민족의 문화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태고 이래 중화 민족이 심미와 예술 활동 방면에서 획득한 풍부한 성과의 역사적 총결산이다(Kwon, 1989).
이러한 총결산 가운데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고대 문화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유가와 도가가 형성해 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로 볼 때, 유가나 도가의 이론은 현실 생활의 발전과 서로 조화되지 않는, 진부하거나 현허(玄虛)한 공담(空談)에 지나지 않았다(Jang, 2022). 그렇지만 거기에는 오랜 기간 동안 획득한 중화 민족 전체의 주요한 문화 성과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영구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 따라서, 유가나 도가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기타 여러 학파에 비할 바 없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 선진예술과 선진미학
미학 사상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예술의 발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그것은 예술의 창조와 감상을 통해 누적된 경험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역사상 일찍이 중대한 영향력을 가졌던 미학 사상은 특정 역사 시기의 예술 번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선진미학의 발생 또한 그러하다. 다음에서 중국 고대의 각종 예술 발전과 선진미학과의 관계를 연계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선진미학에 대해 가장 직접적이고 주요한 영향을 끼쳤던 예술은 음악이다. 선진미학 사상은 거의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이는 고대 중국에 있어서의 음악은 각종 예술 중에서 가장 중시되었고, 고도의 발전을 이룬 하나의 예술이며, 각종 예술의 중심이고, 원천이라 할 수 있다(Joen, 2008).
원시 씨족 사회에서 음악은 씨족의 제사나 공로를 경축하는 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당시만 해도 아직은 오로지 감상만을 위한 예술은 못 되었다. 중국 고대 노예제 사회는 대량의 원시 씨족 사회의 전통 풍습을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제(上帝)나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공로를 경축하는 의식 행사는, 모든 사회의 생존과 발전에 대해서 극히 주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과 연관된 음악 역시 중요성을 인정 받았다.
『呂氏春秋』「古樂」편의 기록에 의하면, 고대 제왕이 음악을 지은 것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공로를 경축하는 등의 의식 행사에 사용되었다(Sim, 2018).
예를 들어, 전욱(顓頊)은 비룡(飛龍)에게 명하여 ‘승운(承雲)’을 짓게 했고, 요(堯)임금은 질(質)과 고수(瞽叟)에게 명하여 ‘대장(大章)’을 짓게 하였는데, 이 모든 것은 ‘상제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서이다. 순임금이 질에게 명하여 ‘구초(九招)’, ‘육열(六列)’, ‘육영(六英)’을 짓도록 한 것은 ‘제왕의 덕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우임금이 고요(皐陶)에게 명하여 ‘하약구성(夏龠九成)’을 짓게 한 것은 ‘그 공로(治水의 공로)를 밝히기’ 위해서였으며, 탕임금이 이윤(伊尹)에게 명하여 ‘대호(大護)’를 짓게 하고 ‘신로(晨露)’를 노래하고 ‘구초(九招)’와 ‘육열(六列)’을 엮도록 한 것은 ‘그 선함을 밝히고’, 탕임금이 육주(六州)를 거느리고 걸의 죄를 토벌하는 공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Kim, 2012). 무왕이 주공에게 명하여 ‘대무(大武)’를 지은 것은, 무왕이 은(殷)을 정벌할 때 ‘정예 병사를 거느리고서 목야(牧野)에서 은과 싸워 승리한’ 무공을 기리기 위해서였다(Kim, 2014).
음악은 통치자의 사회 정치 활동 중에 특별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악관을 설치하여 관리하였으며, 아울러 악기를 제조하는 데 있어서 많은 재물을 아끼지 않고 소비하여 끊임없이 개진해 갔다. 춘추 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에 이미 쇠(金), 돌(石), 흙(土), 풀(草), 실(絲), 나무(木), 박(匏), 대나무(竹) 등 각종 재료를 사용해서 만든 악기가 있었다. 그중 최초의 것은 돌로 만든 것이다(Sim, 2018). 후에 청동으로 만든 편종(編鐘)이 가장 주요한 지위를 지니게 되며, 규모도 놀라울 정도로 거대해진다. 호북 수현(湖北隨縣)에서 전국 초기의 증후 을묘(曾侯乙墓) 가운데 청동 편종(靑銅編鐘)이 출토된 것은 거의 64건에 달하며, 모두 합쳐서 무게가 2500근이 되었다(Sim, 2018). 측정을 해보니, 음역이 넓고 12율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며, 아울러 완정(完整)한 반음계까지 구성할 수 있어서 현대 음악의 악률에 매우 가깝다. 이는 고대 음악사에 있어서 보기 드문 창조이며, 중국 고대 음악 발전의 높은 수준을 나타내 주고 있다(Sim, 2018).
이와 유사한 대형의 편종은 고대의 제사를 지내고 공업(功業)을 기리는 의식에서 연주하며, 자연히 장엄하고 엄숙하고 숭고하며 숙연한 효과를 나타내어 사람들의 정감에 강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이는 비록 단순한 음악 감상은 아니라 할지라도, 의심할 바 없이 음악의 사회 정치 작용을 발휘함과 동시에 미적 감수를 준다. 각종 주요한 의식에 사용되는 편종 외에 대나무, 나무, 실 등의 재료로 만든 악기의 연주는 춘추 시기, 특히 전국 시기에 이미 상당히 광범하게 행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전국책(戰國策)』「제일(齊一)」편의 기록에 의하면, 제(齊)나라 임치(臨淄)에는 “백성들이 피리를 불고 비파를 타고 축(筑)을 타며 거문고를 연주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Lim, 2011).”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음악의 연주는 민간에서 일종의 감상 오락 활동임에 틀림없다. 음악이 사회 생활 내에 광범위하게 침투되어 있음은, 공자와 같은 사상가조차도 적극적으로 음악을 애호하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노래하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가히 짐작할 만하다. 음악의 수양은 이미 통치 계급의 문화 수양 가운데 없어서는 안 될 주요한 과목으로 되었다.
음악은 선진 시대 사회에서 매우 중시되었다. 음악과 같은 이러한 정감의 표현에 치중하며, 모의성의 재현이나 사건의 서술만이 아닌 예술은, 예술이 지니고 있는 심미 특징 및 그것이 지니는 독특한 사회적 기능을 상당히 순수하게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선진 시기의 음악이 고도로 발전한 것은 선진미학의 생성에 매우 주요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중국 고대 미학이 예술의 특징을 항상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선진미학은 최초에는 주로 음악에 대한 창조나 감상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건립되었다는 사실과 주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선진 철학과 미학 가운데 최초로 유사백(由史伯)과 안영(晏嬰)이 제기한 ‘화(和)’의 관념은 음악과 직접 관련이 있다. 단목공(單穆公), 악공 주구(州鳩), 오거(伍擧) 등이 음악의 인간에 대한 정감의 영향 및 사회 생활 속에서의 작용에 대해 분석한 것(Kim, 2006)은, 예술 특유의 심미 특징과 사회 기능에 대한 분석을 포함하고 있다.
음악을 통해 미와 예술을 관찰하고 음악성의 미를 고도로 중시한 것은, 중국 고대 미학과 각종 예술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 고대 미학의 특징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이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주요한 관건이다.
음악 이외에 선진미학에 대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예술은 시이다. 시는 음악, 춤과 함께 초기에는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었으나, 이후에 차차 분화되었다. 중국 고대의 시, 특히 서정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시경』에 들어 있는 주대의 시가들은, 중국 주대의 시가 예술이 이미 고도의 성취를 이루었음을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Chung, 2014). 그 중, 「대아(大雅)」나 「송(頌)」에 들어 있는 시들은 중국의 고대 정치나 역사 문헌과 같은 기사적 성격을 띠고 있고, 「국풍(國風)」과 「소아(小雅)」, 특히 「국풍」은 그 자체로서 이미 서정 문학을 이루고 있다(Kim, 2012). 이들 시들은 흡사 말을 하듯 질박하고 명백하면서도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 속에서는 귀신을 믿는 따위의 종교적이거나 망상적인 흔적은 이미 찾아볼 수가 없다. 모두가 현실 사회 인생의 묘사나 정감의 표현이었다.
공자는, “시 삼백 편은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Lim, 2016)”라고 말했다. 그는 『시경』속에서 선명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현실 인생을 긍정하는 그러한 건전한 이성 정신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Lim, 2016). 『시경』은 본래 통치자가 반드시 학습해야 할 일종의 역사 문헌이며, 정치·외교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시경』이 지니고 있는 심미와 예술의 가치가 차차 중시되기 시작했다.
또, 전국 후기에 와서는 굴원(屈原)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초사(楚辭)』도 저술되었다. 『초사』에는 고대 무속이나 신화와 관련된 기이하고 아름다운 환상이 풍부하여, “놀라운 문체, 빼어난 아름다움은 더불어 그만큼 능하기 어려울 정도(Park, 2021)”이며, 중국 고대 시가의 발전에 새로운 경지를 열어 주었다. 그것은 『시경』으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미 이외에 일종의 낭만주의 미를 창조하였고, 게다가 문학이 지니고 있는 일반적인 서사적(敍事的), 의론적(議論的)인 문장과는 다른 심미 특징을 충분히 드러내 주고 있다.
북방에는 주대의 『시경』이 있고, 남방에는 초나라 땅의 『초사』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중국 고대 문학의 찬란한 양대 흐름을 이루어, 끊임없이 중국 고대 미학의 발전에 심오한 계시와 영향을 주었다(Yun et al., 2014). 선진미학의 발전으로 볼 때, 시가 끼친 영향은 주로 음악에 비해 이성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표현의 성격을 띤 시를 통해서 문예와 형상화 된 인간 감정 간의 관계, 문예의 인간에 대한 사상적 감화·교육 기능, 특히 문예로서의 시가 일상적인 언어와 구별되는 심미 특징을 보다 깊이 인식케 한 데 있다.
“시는 가히 감흥을 일으킬 수 있고, 올바로 볼 수 있게 하고,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잘못을 원망할 수 있게 한다.(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라고 하는 공자의 견해는 시에 대한 깊은 사고에 근거해서 개괄해 낸 것이다(Kim, 2001). 특히, 그 중에서 ‘감흥을 일으킨다(興)’는 것은 문예의 표현 방식과 형상 특징을 깊이 파악한 견해이다. 이는 음악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개괄해 내기 어려운 것이다. 시에 대한 연구는 여러 측면에서 주로 음악으로부터 개발해 낸 미학 사상을 풍부히 하고 심화하였다.
전국 말기에 저술된 『초사』는 당시 『시경』과 같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초사』에 대한 미학적 개괄은 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굴원의 작품 가운데 미학 사상은 유가를 계승했고, 동시에 도가의 미학과 상통하는 점도 지니고 있어서, 유가의 미학과 선명하게 다른 일종의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였다(Yun et al., 2014). 비록 노자와 장자가 『초사』를 보았을 리는 없지만, 초나라나 초나라 부근에서 활동했던 노자와 장자는 『초사』의 저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초나라 문화 중의 무속이나 가무를 접했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그들의 미학 사상은 초나라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
고대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조형 예술에 있어서 선진의 건축 예술은 이미 상당히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서는 볼 수가 없다. 회화 예술은 아직도 다소 남아 있고, 제자 백가 가운데에도 단편적인 기술이 보인다(Lee, 2010). 현존하는 주대 말엽의 비단 그림을 보건대, 당시에 실을 사용해서 조형을 하고 정감을 표현하는 면에서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병화(甁畫)와 확연히 다른 독특한 품격을 나타내고 있다.
건축과 회화 이외에 현재까지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는 은·주 이래의 청동기 예술이 있다. 그 찬란한 성취는 옛 그리스의 조각 예술이 전 세계의 공인을 얻은 것처럼 인정을 받고 있다. 당시의 청동기 예술은 형체의 거대함이나 기교의 정교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다(Wang, 2019). 뿐만 아니라, 청동기 예술은 그것이 생성된 역사 시대의 심미 의식과 심미 이상을 매우 강렬하게 체현(體現)함으로써 일반 공예품보다 뛰어난 고도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많은 청동기의 제조는 대부분 특별한 의의가 매우 큰 예술 창조였으므로 일반용품의 생산과는 같을 수 없었다. 은·주 시대와 전국 시대의 청동기 특유의 날렵하고 생동감 넘치는 미는, 모두 일반적으로 말해서 당시 사상가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Lee, 2010). 왜냐하면, 조형 예술에 종사하는 일은 고대에 있어서 경시를 받는 장인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황은 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러므로 조형 예술의 발전이 선진미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은 음악과 시만큼이나 직접적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공자, 장자, 한비자 및 『여씨춘추(여씨춘추)』에서 회화나 조각, 건축을 언급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조형 예술의 영향도 있었던 것이다(Wang, 2019). 선진미학에서는 항상 시각적인 ‘오색’의 미나 문채의 미에 대해 배척하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조형 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음악이나 시의 미와도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 밖에 매우 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각종 수공 기예를 다루는 솜씨가 춘추 전국 시대에 고도로 숙련된 정도에 달했으며 이는 오랜 기간 동안 노예의 노동을 이용하였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반예술’의 성질을 띠고 있다. 그것들은 일찍이 장자의 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 속에서 예술 창조 중의 자유와 규율의 관계를 체득하였다. 이는 장자가 ‘도(道)’와 ‘기예(技藝)’를 논하는 일련의 우언(寓言) 가운데 명확히 표현되고 있다(Lim, 2010).
전체적으로 볼 때, 선진예술은 여러 방면에서 선진미학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선진예술이 없었다면 선진미학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진미학의 사상은 선진예술이 이룬 철학적 개괄이며 승화의 결과이다. 그리고 선진미학은 선진예술 가운데 오늘날까지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이며 영혼이다.
3. 선진철학과 선진미학
미학이 탐구하고자 하는 미와 예술의 본질 문제는 인류 사회의 역사 발전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는 인류 역사 발전의 본질이라는 근본 문제와 관련된 주요한 분야이다. 미학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우주, 인생과 같은 폭넓은 문제에 대한 일정한 인식을 이론적 전제로 삼아야 한다(Jang, 2022). 설사 많은 미학가들이 이 점에 관해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고대 미학은 중외(中外)를 막론하고 모두 철학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선진미학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선진 철학을 이해해야만 한다. 선진미학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는 거의 선진 철학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의해 결정된다.
미학과 철학은 주요한 연관을 맺으며 인간의 본질에 관한 여러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미와 예술의 본질에 대해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선진미학으로 말하자면, 춘추 시대 이래 이성주의 사조가 팽배해 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들이 나왔고, 따라서 미와 예술의 본질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들도 표출되었다(Go, 2019).
유가는 개체와 사회는 충분히 통일될 수 있고, 또 마땅히 통일되어야 한다는 점에 매우 긍정을 표시하였다. 유가의 이상 가운데 사회는 엄격한 등급에 따라 조직된 사회이지만, 또 개인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즉, 개체는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 속에서 사회를 통해 발전하고, 사회는 각 개체의 조화로운 결합에 따라 발전한다.
유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이상적 사회를 실현하려면 어떻게 각 사회 성원이 순결하고 고상한 윤리·도덕과 정감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가장 주요한 문제이다. 바로 그러한 까닭에 유가는 사람들의 윤리·도덕과 정감에 깊이 영향을 줄 수 있는 심미와 예술 활동을 매우 주요한 지위에 올려놓고, 그것을 고상한 도덕과 정조를 갖춘 사람으로 양성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서 유가 미학과 유가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보는 견해와의 연관성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가가 미와 예술의 주요한 작용에 대해 인정한 것은, 동시에 동물과 구별되는 사회, 윤리·도덕 의식을 지닌 인간의 가치에 대한 인정이기도 하다.
유가와 마찬가지로 도가 역시 개체 생명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도가는 세속 사람들이 각종 공리(功利)와 욕망, 목적에 대해 바라고 추구하는 바가 인간들로 하여금 외계 사물의 구속을 받게 하고, 생명의 자유를 잊게 한다고 생각하였다(Lim, 2010). 유가가 표방하는 인의 도덕은, 도가의 입장에서 보면 외부에서 사람들에게 강제로 가하는 질곡이며, 허위적이고 유해한 것이다. 외재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인간은 각종 불필요한 시련과 희생을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는 개체의 생명이 충분히 자유로운 발전을 얻으려면 반드시 일체의 공리나 욕망, 목적의 추구에서 초탈하여, 인간 세상의 일체 득실을 법도 밖에 두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도가는 자연의 영원성과 무한성 및 그것의 합목적성과 합법칙성의 자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로부터 인류 생활의 이상을 추구하고, ‘자연을 법으로 삼아야 한다(Lim, 2010)’고 주장하였다. 즉, 순수한 자연스러움에 맡겨 공리의 득실을 위해 고심하지 않는 생활을 하며, 외계 사물의 인간에 대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정신상의 절대 자유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생활의 실현은 도가에 있어서 최고의 미이며 절대적인 미이다. 확실히 도가의 인간 본질에 대한 인식은 소극적이고 출세적인 공상성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유가에 비해서 그것은 계급 사회 안의 개체와 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모순을 심각하게 폭로하고, 개체 생명의 자유로운 이상을 두드러지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미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크게 발전하였다.
Ⅳ. 논의 및 결론
미학의 발생은 본래부터 지니고 있던 신분제도의 구분을 때로는 유지하도록 했고, 이러한 구분을 타파함으로써 충분히 재산을 획득하고 누적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는 신성한 신분제도의 구분을 고려하지 않고 이를 타파하면서 발전하였다. 미학은 정치적인 작용을 발휘하는데 활용되었고, 이는 현실 사회의 인생을 묘사했을 뿐만 아니라 심미 이상과 예술 창조의 자유와 규율을 체득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선진미학은 미와 예술의 문제와 인간의 본질 문제와의 관계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만일, 선진 시기 각 학파의 철학이 유물적인가, 아니면 유심적인가 하는 것을 판정하는 데에만 논의가 머물게 된다면, 각 학파의 철학과 그들의 미학이 가지는 내재적인 연관성을 진정으로 인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미학에 대해서도 참으로 깊이 있는 분석과 평가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선진미학은 인식의 발전 과정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미와 선의 통일을 긍정한 다음에는 미와 선의 관계가 반드시 제기되어야 한다. 선의 실현은 단지 주체가 스스로 결정하는 활동일 뿐으로, 주체의 신앙, 정감, 의지, 개성 등 여러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선의 실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 또한 이러한 요소들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점은 주로 맹자로부터 전개되고 있다. 미와 진의 문제는 선진미학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 않다. 유가나 도가의 미학이 모두 그것을 언급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문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지는 못하다. 이는 중국 고대 미학이 미와 예술과 이성, 윤리의 연계성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고대 그리스 미학이 미와 예술과 인성 인식의 관계를 강조했던 것과 매우 다른 점이다.
마지막으로 선진 시대 미학 발생의 역사적 배경 연구를 통해 미학 교육에 활용하고 이를 통해서 실용 교육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인성제고와 동양문화의 시원을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사료된다.
향후 미학의 후속 연구를 통해 시대별, 분야별로 구체적으로 접근하여 이 논문의 한계를 보완·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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