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학을 기초로 한 공자의 예술관에 대한 연구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pare guidelines that can be used educationally based on the view of art examined through Confucius. The research method was to interpret the view of art as a human being. Courtesy and Justice is directly related to human nature. This refers to paternal affection based on clan blood relations. It was believed that if people were to realize this and take conscious action, society would have a conciliatory atmosphere and propriety would naturally be restored. Chéngyúlè argues that a perfect human being is created through the learning of music. Yóuyúyì means that if you govern the world by example, you can reach the highest level. This speaks of a view of art based on humanism. However, the research materials were re-edited according to the philosophy and narrative style of later scholars or certain thinkers. Therefore, it is hoped that follow-up research will be conducted on this and a faithful interpretation of Confucius's evil and propriety will be achieved.
Keywords:
View of art, The study of benevolence, Achieve in music, Play in courtesy and justiceI. 서 론
공자의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기원전 551년(周靈王 21년)에 출생, 기원전 479년(周敬王 41년)까지 살았다. 그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위대한 사상가, 교육자, 정치가이자, 중국 미학 이론의 기초를 마련한 매우 주요한 인물이다(Kim, 2016).
공자의 미학은 그의 모든 사상의 유기체적인 구성 부분으로, 그의 사상의 핵심인 인학(仁學)과 직접적인 관련을 이루고 있다(Lee, 2006). 그의 미학은 인학으로부터 심미와 문예 문제를 관찰, 해결하여 얻어 낸 결론이었다. 공자 미학사상 이전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욱 첨예하고, 후대에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자의 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의 미학 정신을 파악하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중국 고대 초기의 노예제가 그 과도기적 대변화 시기에 처해 있을 때 살았던 공자의 사상은 이미 몰락해 가는 씨족 귀족의 철학사상을 대표하고 있었다(Kim, 2016). 그는 씨족 귀족의 입장에 서서 원시 무술 의례에서 비롯되어진 씨족 귀족 정치를 옹호하던 ‘주례(周禮)’를 적극 지지했다(Lee, 2006). 그러나 역사는 이미 씨족 귀족이 신명과 같이 받들던 ‘주례’를 무참하게 파괴시키고, ‘예(禮)와 악(樂)이 붕괴되어 가던’ 상황 속에서 단순히 강압적인 수단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주례’를 존중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Seo, 2020). 이에 공자는 독창적으로 ‘인(仁)’으로써 ‘예’를 해석하여, ‘예’란 인간의 본성과 직결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Seo, 2020). 그의 인학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공자에 따르면, ‘예’에 의해 규정되는 상하 등급, 존비노유(尊卑老幼)의 질서는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씨족 혈연 관계를 기초로 하는 친자(親子) 간의 사랑을 기초로 하여 성립된 것으로, 인성에 내재하는 욕구라고 설명하고 있다(Kim, 2016). 씨족 혈연 관계를 기초로 하는 이러한 친자의 정이 바로 그가 말하는 ‘인’의 근본으로,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이러한 점을 깨우치고, 이에 대해 자각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만 한다면 ‘하극상(下剋上)’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사회는 화해적인 분위기로 발전해 나가 ‘예’는 자연히 회복될 것이라고 하였다(Seo, 2020).
공자의 제자인 유자(有子)는 『논어(論語)』의 「학이(學而)」편(이하 『논어』에서의 출전은 편명만을 적는다.)에서 말하기를, “그 사람됨이 효도하고 공손하면서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는 자가 적으니, 윗사람을 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난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을 것이다. 군자는 근본을 힘쓸 것이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길 것이다. 효도와 공손은 사람됨의 근본인 것이다.”라고 하였다(Kim, 2016). 어버이를 친하게 여기는 것으로부터 이를 확산하여, 공자가 말한 ‘널리 무리를 사랑하되, 어진 이를 친히 할 것(Mo, 2017)’, ‘백성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서 능히 무리를 구제(Kim, 2015)’하게 된다면, 이는 곧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어 천하 역시 크게 다스려질 것이다.
‘인’의 의미는 이처럼 깊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면 사람이 자각적인 노력을 통해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말미암을 것이냐(Kim, 2015)?”, “내가 인을 하려고 하면 인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Kim, 2017).”라고 했으니, 이는 그 심오한 ‘인’이 본디 각 개인이 모두 갖추고 있는 내재적 요구이며, 심원한 형이상학(形而上學)적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춘추시대 심미 관념은 악과 예를 통해 발전되었다. 특히 공자의 악과 예에 대한 사상이 『논어』에 많은 예를 보이고 있으므로 『논어』에 나타나는 공자의 예술관과 관련된 내용 중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을 연구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공자의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을 연구하고자 이들이 기록된 전적을 좇아 분석하여 현대인의 삶을 통해 실천할 바를 찾아볼 것이다. 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 지침을 마련하는데 이 연구의 목적이 있다.
Ⅱ. 연구 방법
1. 연구 대상
본 연구는 인학을 기초로 한 공자의 예술관에 대한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춘추시대 이후 공자의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 문헌은 『논어』, 『춘추』 등이다. 이에 수록된 미학 사상 중에서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을 통하여 춘추시대 이후의 악과 예의 관계를 파악하고 분석하여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또한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이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살펴서 인격의 완성과 인간의 자유감각 습득 지혜와 다양한 예술 교육의 안내 지침을 마련하는 것을 연구 대상으로 한다.
2. 연구 방법
중국 공자 시대의 문헌에서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이 기록된 내용을 수집하여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켜 왔는지를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를 진행한다. 2024년 1월부터 참고문헌을 수집・분석하고, 약 6개월 동안 악과 예에 관한 사상이 드러나는 공자의 인식을 추출하여 인을 기초로 한 예술관을 해석하고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연구 결과에 나타난 내용을 분석하여 결론을 이끌어 내고, 논문의 시사점과 연구의 제한점, 향후 연구 방향 등을 제시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Ⅲ. 연구 결과
공자의 인학은 잔혹한 투쟁으로 일관되었던 춘추 전국 시대에는 보수적이며 도태된 것, 실현이 불가능한 것으로, 심지어는 환상적인 일로 비현실적인 일로 여겨졌다. 공자 역시 당대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으며,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이를 시도하려고 하는 완고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 할 것은 공자의 인학이 초기 노예제 사회에 잔존해 있던 씨족 공동체 사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원시적 인도주의와 박애 정신을 보존, 발양하고 있었음이다. 이러한 것은 악과 예에 대한 공자의 예술관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1. 공자의 심미와 예술관
역사 발전에 필연성과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탐욕과 잔혹함은 원시적 인도주의와 박애정신의 숭고함, 아름다움에 비견할 바가 못 되는 것이다. 더욱이 긴 역사 발전의 안목에서 볼 때, 인류 발전에 대한 공자의 심미와 예술에 관련된 사상적 의의와 가치는 더욱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공자 이후 수천 년 간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을 살펴볼 때 공자의 인학은 소중한 것이며, 후세에 계속해서 긍정적인 의의와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공자의 인학은 중국 고대 사상사에서의 인간에 대한 생각을 크게 변화시켰다. 혈연관계를 기초로 하는 개체 인격이 형성된 후 상호 의존적 인간관계의 사회성이 발달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공자는 무리를 떠난 개체를 강력히 부정하였으며, 인간과 동물을 같은 무리로 취급하지 않았으니, 인성의 동물화에 대해 “조수(鳥獸)와는 더불어 무리짓지 못한다(Lee, 2017).”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어떤 사람이 ‘인’의 길을 걸을 수만 있다면, 비록 형제가 없을지라도 전 인류가 모두 그의 형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군자는 공경하여 잃는 것이 없으며, 사람과 더불어 공손하고 예가 있으면 사해 안이 다 형제이니, 군자가 어찌 형제 없는 것을 근심하리요(Kim, 2015)?”라고 하였다.
공자는 개체 인격의 능동성과 독립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개체 인격의 발전과 완성이 진정한 사회의 화해, 발전의 실현에 있어 극히 주요한 조건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는 “필부라고 해서 그 뜻을 빼앗을 수는 없다(Park, 2015).”, “몸을 구하려고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이면서까지 인을 이루고자 한다(Kim, 2021).”라고 하였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을 어겨서는 안 되며, ‘인’의 행함을 최대의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이에 따라, 공자는 그 이전의 종교, 신학 등 외재적인 신앙의 지배를 받던 사람들을 각 개인의 내재적인 심리, 윤리적인 요구에 의해 자각적인 지배를 받는 사람으로, 또 사회에서 항상 인륜이 실천되는 가운데 적극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여 합리적인 만족을 취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이와 같은 변화는 분명히 중국 고대의 인간에 대한 관념의 일대 혁신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공자가 비록 여전히 ‘천명(天命)’이라는 관념을 고수하고 있었지만, 이는 인간이 실패에 부닥쳤을 경우이며 이로써 자위하여 일을 풀어 가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인간에 대한 관념상의 커다란 변화에 의해, 공자는 근본적으로 심미와 예술이라는 사회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있고도 보편적인 의의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견해를 피력한 사람이 되었다. 왜냐하면, 심미와 예술이라는 사회 현상은, 결국 인간이란 ‘자연으로부터 사회적인 인생으로 이루어져 가는 길고 긴 역사 과정의 결과이고 산물’이며, 일정한 미학 이론은 결국 인간 본질의 일정한 역사 발전의 단계 및 이러한 이론을 내놓은 사상가, 미학가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서로 상응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Lee, 2006). 공자 미학의 출현은 결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그 가치의 중요성은 종교, 신학이라는 외재 신앙에서가 아니라, 처음으로 충분한 자각을 가지고 명확하게 인간의 내재적인 요구로부터 출발하여 심미와 예술을 고찰했다는 데 있다.
인학을 기초로 하여 개인의 인격에 ‘인’을 심어 줌으로써, 사회의 화해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공자는 항상 씨족 통치를 보호해 주던 전장(典章), 제도(制度), 규범(規範), 의식(儀式), 즉 ‘주례’가 혼합되어 하나가 되는 문예는 외재적인 도구가 아닌 인간의 성정을 깨우치고 수양시켜, 그들이 ‘인’이라는 내재적인 기능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점에서 공자의 ‘인학’은 그의 미학과 연결되어 있다.
공자는 친자의 사랑을 그의 모든 인학의 뿌리로 삼아, 개인의 사회적 감성 등의 심리 요소가 ‘인’을 실행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그는, 진정한 효란 부모를 부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주요한 것은 부모에 대해 진정한 경애(敬愛)의 사회적 감성을 지녀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개나 말과 다를 바 없다고 하였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날의 효란 봉양함을 일컬으나, 개나 말도 모두 기를 수는 있거늘, 공경함이 없다면 어찌 다르다 하겠는가(Kang, 2004)?” 이는 공자로 하여금 인간의 감성에 작용함을 그 주요 특질로 하는 심미와 예술에 중요성을 두게 했으며,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그의 ‘인학’으로부터 그의 미학이 도출되게 되었다.
공자 미학은 실제 그의 ‘인학’의 자연스러운 연장으로, 우리는 이를 심미적 심리학(윤리학 또는 심리학), 윤리학적 미학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 공자는 개인의 관능 욕구를 만족시킬 필요성과 합리성을 긍정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감정, 심리에 심미와 예술이 즐거움을 전이시키는 역할을 주요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이러한 역할이 군중의 화해로 발전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의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심리 욕구와 사회의 윤리 규범, 이 두 가지의 융합 일치가 공자 미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다음에 나오는 공자 미학의 구체적인 분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구의 고대 그리스의 미학과 중국 미학의 발전과 비교해 볼 때, 이러한 특징은 공자의 미학만이 가지고 있는 주요한 장점이 있는 반면, 불가피한 단점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인학을 기초로 한 공자의 예술관
공자는 인간이 ‘인’을 실행하는 데 가장 주요한 것은 ‘인’이 외부의 강제성에 의거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내재적 정감상의 자각적인 요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자는 반복하여 거듭 이를 강조하고 설명하였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겨하는 자만 못하다(Kim, 2015).” 이를 다시 말하면, ‘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는 ‘인’을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또 ‘인’을 좋아하는 자는 ‘인’으로만 즐거움을 삼는 자만 못하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호(好)’는 일시적인 흥취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지만, ‘낙(樂)’은 내심의 정감의 요구와 만족으로서, 외부의 환경에 의해서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좋아함에는 성쇠(盛衰)가 있으니, 즐거움의 깊이만 못하다.”는 것이다. ‘지(知)’, ‘호’, ‘낙’은 또 순차적인 세 가지 경계이다. ‘낙’이라는 외재적 규범은 최종적으로 내재하는 심령의 유쾌함과 만족으로 전환되는 바, 외재와 내재, 사회와 자연은 여기에서 인간의 통일을 얻으니, 이것이 ‘인’의 최고 경지인 것이다. 이것은 인식, 언어, 규범, 선행(善行)일 뿐만 아니라 미이며 예술이다. 그래서 공자는 “가난하나 즐거워한다(Mo, 2017).”라고 찬양했고,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 안회(顔回)와 같음이 인의 최고 경지라고 찬미했다.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항(陋巷)에서 사는 것을 사람들은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으니, 어질도다 회여(Kim, 2015)!”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공자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자더라도 즐거움이 또 그 안에 있으니, 의롭지 못하고 부귀한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Kim, 2017).”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일상의 생활에서 그는, 인이라는 도덕의 실행을 기쁨으로 삼는 자가 적음을 보고 탄식하여 “나는 덕을 좋아하기를 색(色)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Park, 2015).”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호색(好色)’하는 것만큼 ‘호덕(好德)’할 수 있게 하며, ‘호덕’이 인간의 자연적인 심리 욕구가 되게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해야 “기쁘게 하는 도가 아니면 기뻐하지 아니한다(Jang, 2021).”라고 할 수가 있으며, ‘인’의 이러한 최고 경지에 도달하여 인생의 최고의 기쁨을 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도덕적인 교훈에만 의지해서도, 더욱이 형법의 강제성에 의지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대의 씨족 공동체 사회에서의 박애 정신을 생각해 본 공자는 “형벌로 다스린다(Kang, 2004).”고 하는, 즉 형법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통치자의 요구에 따라 행동을 따르게 한다는 방법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Kang, 2004).”고 주장하였으니, 이는 곧 덕에 의한 정치로 인심을 감화시키고, 예로써 사람들의 행동을 규제한다는 것이었다.
인심을 감화시키는 데 있어서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즐겁게 ‘인’을 행하게 하는 수단이다. 19세기 독일의 미학가인 쉴러(Schüler)는 심미와 예술은 “인간 개인의 천성을 통해 전체의 의지를 실현하도록 할 수 있다(Shin, 2021).”라고 말한 바 있다. 어떤 일정한 정도만큼은 2천5백여 년 전의 공자 역시 이 관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그의 ‘성어락(成於樂)', ‘유어예 (游於藝)’의 사상에 집약되어 나타나 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詩)로써 감흥을 일으키고, 예(禮)로써 질서를 세우며, 악(樂)에 의해 인격을 완성한다(Song, 2015).” 여기에서 공자는 시와 악을 예와 같이 병립시켜, 인인군자(仁人君子)를 만드는 데 필요 불가결한 조건으로 파악하였다. 포함(包咸)의 주해에서는 이를 “흥(興)은 기(起)이다. 이는 먼저 수신(修身)하기에 앞서 시를 학습해야 한다(Song, 2015).”고 해석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인군자가 되기 위해서 먼저 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은, 시가 고대에는 본래 일종의 정치성, 종교성, 역사성을 띤 문헌으로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를 학습함으로써 인인군자에게 필수적인 정치, 윤리, 역사 등의 각종 지식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공자 시대에 시는 고대 문헌의 하나로 파악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예술품으로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군자의 수신에 필요한 첫 번째 항목이었던 시의 학습은, 고대 문헌으로부터 각종 지식을 흡수한다는 의의 이외에, 정감을 함양한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주희(朱熹)의 주해에서 말한, “착함을 좋아하고 악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스스로 그치지 아니하는 바가 있으니, 반드시 이에서 얻을 것이다(Lee, 2016).”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군자의 수신은 시의 학습에서 시작하여 최후의 완성은 악에 있으니, 이 또한 더욱 명확하게 공자가 예술에 부여한 주요한 의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성어락(成於樂)’이란 무슨 뜻인가? 공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장무중(藏武仲)의 지혜와 공작(公綽)의 탐욕하지 아니함과 변장자(卞莊子)의 용맹과 염구(冉求)의 재예에 예와 악을 겸비하면 또한 성인이 될 것이다.’고 답하셨다(Yoon, 2010).” 소위 ‘예와 악을 겸비한다(文之以禮樂).’고 하는 것은 공안국(孔安國)의 주해에서 말한, “이에 예와 악을 더하는 것으로 문(文)을 이룬다(Kim, 2015).”고 하는 뜻이다. 이것은 곧 군자의 수신에 있어, 예와 악을 학습하지 아니하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말한 ‘성어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악의 학습을 통해 하나의 완전한 인간이 만들어짐을 얘기한다.
악이 이렇게 주요한 작용을 하는 이유는 또한 ‘악이 성정(性情)을 이루는 까닭(Kim, 2015)’이 되기 때문이다. “악으로써 성정을 다스리니, 고로 성정이 이루어질 수 있고, 성정을 이루는 것이 또한 수신하는 것이다(Yoon, 2010).” 이것은 ‘성어락’에 대한 후대의 주해로서, 공자 자신의 말은 아니지만 공자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다.
공자는 악이야말로 인간의 성정을 변화시켜 사람의 심령을 감화시킴으로써 자각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인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화(陽貨)」에서 이르기를, “공자께서 무성(武城)에 가시어 거문고와 노랫소리를 들으셨다. 공자께서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는가?’라고 하시니, 자유(子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아 언(堰: 자유의 본명)의 말이 옳다. 앞서 한 말은 농담이었다.’라고 하셨다(Hong, 2024).”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공자는 고의적으로 그의 학생에게 농담으로, “한 조그만 무성을 다스리는 데 ‘악’이 필요하단 말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이에 그의 학생이 공자를 만족시킬 만한 대답을 하여 악과 ‘학도(學道)’의 관계를 지적, “악은 가히 군자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하고(즉, 인의 길을 행함), 소인은 부리기 쉽게 한다.”고 답한 것이다.
악을 통해 소인을 ‘부리기 쉽게 한다.’라는 것에는 통치 계급의 상당히 가벼운 생각이 표출되고 있지만, ‘악이 군자나 소인 모두에게 감화 작용을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은, 악의 역할에 대한 공자의 견해를 말해 주고 있으니, 이것이 후세의 주해 가운데 보이는 소위 ‘악이 성정을 이루는 까닭〔악소이성성(樂所以成性)〕’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악이 인성에 대해 감화, 수양의 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에 있어 악의 주요한 의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이다.
‘성어락’ 이외에 공자는 또 ‘유어예’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는 “도에 뜻을 두며, 덕에 의거하고, 어진 것에 의지하며, 예에서 노닐어야 한다(Kim, 2017).”라고 하였다. 이는 군자가 마땅히 어떻게 자신을 하나의 완전한 사람으로 이루어 내는가에 관한 말이다. 공자에 따르면, 먼저 도의 배움을 그 지향하는 바로 삼아, 그다음 덕에 따라야 하며(이는 원시 고대 씨족의 예속 규범 또는 습관이기도 하다), 그다음으로 인에 의지하며, 마지막으로 각종 예에 관한 일을 두루 돌아보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유어예’의 ‘예(藝)’란 현재 우리가 말하는 예술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도 그 안에 포함된다. ‘유어예’의 ‘예’란, 하안(何晏)에 따르면 ‘육예(六藝)’, 즉 예(禮), 악(樂), 서(書), 수(數), 사(射), 어(御)라는 것이다(Lee, 2006). 공안국과 정현(鄭玄)의 『논어』의 다른 편에 나오는 ‘예’라는 어휘에 대한 주해와 공자의 말을 고려해 볼 때, 기본적으로 ‘예’는 ‘육예’를 가리킴이 정확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육예’에도 또한 그 높낮이의 구분이 있다. ‘사’, ‘어’의 종류는 비교적 저급의 것인 ‘육예지비(六藝之卑)’로서, 정현이 말한 ‘기예(伎藝)’, 공안국이 말한 ‘소예(小藝)’, 공자가 말한 “지위가 천했기 때문에 비천한 일에 능하였다.”고 하는 예, “내가 세상에 쓰이지 못한 바로, 여러 가지 기예를 익혔다.”고 하는 예에 속한다(Park, 2015). ‘육예’ 가운데 ‘서’나 ‘수’ 역시 당시에는 ‘기예’였을 뿐 예술은 아니었다. ‘육예’ 가운데 높은 ‘예(禮)’가 ‘예(藝)’라 간주됨은, ‘예(禮)’의 실행에 의식, 예기(禮器), 복식(服飾) 등의 질서 및 좌우 응대, 진퇴의 행동거지 등 세세하고 엄격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전문적으로 필요한 훈련을 잘 파악하도록 함으로써 여기에는 ‘기예’의 성질이 들어 있는 것이다(Lee, 2006). ‘악’을 ‘예(藝)’의 대열에 포함시킴은 역시 ‘기예’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이는 특정한 물질적 재료 및 그와 관련된 기능의 숙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자가 말한 ‘유어예’의 예는 후세에서 말하는 ‘예술’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당시와 후세에서 말하는 예술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으며, 주요한 것은 그 물질적 기교를 숙련, 파악한다는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 ‘악’은 공자 시대에 또한 시(詩), 가(歌), 무(舞)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가와 무는 ‘악’과 분리시킬 수 없고, 시는 절대 다수의 상황에서 역시 ‘악’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시가 분명 ‘예(藝)’의 범주에 끼일 수 없는 이유는 시의 학습에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예’의 성질이 없기 때문이다(Song, 2015). 공자에 의하면, 군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에 따라 인에 의거해야 하는 것 이외에 또 ‘유어예’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군자가 물질적 기능과 관련된 모든 훈련을 이해, 파악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자연히 ‘기예’적 성질을 가진 ‘악’ 및 그와 관련 있는 시, 가, 무 역시 체험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Lee, 2006).
모든 물질적 기능의 파악에는 자연의 합규율성에 대한 이해와 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일정한 기능적 성격을 지닌 ‘악’은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기능에 대한 숙련과 파악은 자유 감각을 가지게 되는 기초이고, 소위 ‘유어예’의 ‘유(游)’는 바로 이러한 이해에서의 자유 감각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이를 공자가 말한 ‘성어락’과 비교해 볼 때, ‘성어락’은 인간 윤리에 대한 악의 역할을, 그리고 심리 윤리의 융합, 통일을 강조한 것이며, ‘유어예’는 각종 자연 규율을 익힘으로써 인간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고, 이러한 이해 속에서 인간이 자유 감각을 얻게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 ‘성어락’의 ‘성(成)’이 가리키는 것은 인격상의 원만함, 성숙함, 완성도로서, 주로 윤리·도덕과 관련이 있으며, ‘유어예’의 ‘유’는 섭력(涉歷)의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일종의 자유 감각 또는 자유의 희열과 같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 그 가운데에는 놀이, 감상, 오락의 의미가 들어 있다(Song, 2015).
군자는 도에 뜻을 두고 덕과 인에 의거해야 하는 것 이외에, 공자는 또 ‘유어예’를 강조하고 있으니, 이것은 사(謝), 어(御)와 같은 각종 기예를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능의 숙련 가운데 얻게 되는 자유로운 감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은 바로 예술 창조적 감각이며, 심미 감각인 것이다(Song, 2015). 그리고 그 최종 목적은, 후대의 유가가 말하는 것과 같이 여전히 도를 배우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저 예술의 윤리·도덕적 역할만을 강조하는 것과는 다르다. 도에 뜻을 두는 등의 것 이외에 ‘유어예’를 거론함은, 공자의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에 대한 요구, 즉 인간은 마땅히 객관 세계를 제어하는 규율성 중에서 심신의 전면적인 자유를 얻어야 함을 주장하고, 또한 예술이 인간의 전면적인 인격을 실현한다는 이상에 대한 예술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와 동시대 사람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심미의 역할을 부정하는 묵가미학(墨家美學), 혹은 후대의 이학가(理學家), 도학가(道學家)의 논조와 비교 해 볼 때도 인간의 전면적인 발전을 꾀하는 공자의 사상은 매우 값진 것이다(Song, 2015). 공자의 “나는 점(點)과 뜻을 같이 한다.”는 그 유명한 대화는 ‘유어예’의 사상을 형상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공자가 추구하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최고 경지를 설명하여, 개인의 인격과 인생 자유의 최고 경지, 이 두 가지가 거의 동일시되고 있다. 이러한 동일함은 바로 외재적인 ‘예(禮)’를 내재적인 ‘인(仁)’으로 전환시키는 철학적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자로(子路), 증석(曾哲),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가 모시고 앉았는데, 공자께서 “내가 너희들보다 약간 더 나이를 먹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로써 대하지 말라.” 하시며, “평상시에 너희들이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니, 만일 너희를 알아준다고 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자로가 급히 대답하여 말하기를, “천승(千乘)의 나라가 큰 나라 사이에 끼여서 군란이 더하고, 이로 인하여 기근까지 겹치더라도 유(由)가 다스리면 3년이면 백성들을 용맹하게 하고, 의에 향하는 바를 알게 하겠습니다.”라고 했다(Jang, 2021).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구(求: 冉有의 이름)야!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물으니 대답하여 이르기를, “지방이 육칠십 리 혹 오륙십 리에 제가 다스리면 3년이면 백성을 족하게 하려니와, 그 예와 악은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적(赤: 公西華의 이름)아,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으니,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회합이 있을 때면 조복(弔服)과 예관을 갖추고 조금 돕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Hong, 2024). “점(點: 曾晢의 이름)아, 너는 어찌 하겠느냐?”라고 물으니 비파를 잠시 그치고 한 번 소리를 굵게 내고는 그것을 놓으며 일어나 대답하기를, “세 사람이 대답한 것과는 다릅니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무엇이 나쁘겠는가? 또, 각각 자기의 뜻을 말하면 된다.”라고 하셨다(Hong, 2024). “저문 봄에 봄옷이 이루어지면 관을 한 오륙인과 동자 육칠인으로 기(汽)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읊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께서 탄식하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점과 뜻을 같이한다.”라고 하셨다(Hong, 2024).
공자가 증점의 대답을 따르고자 한 이유는, 그가 더욱 깊이 있게 ‘지도(志道)’와 ‘유예(游藝)’의 관계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치국의 도는 예악 교화(禮樂敎化)에 있으며, ‘유예’는 예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에게 이 인학의 최고 경지는 다름 아닌, 자유의 세계, 심미의 경지이며, 또 공자가 찬양한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한다.”라고 하는 인생의 경지인 것이다.
공자는 사회의 ‘예(禮)’와 이전의 이성적인 규범을 천성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자각적인 요구로 변화시켜, 최후에는 일종의 자유의 ‘유희(游戱: ‘성어락’, ‘유어예’)’가 됨으로써 전면적인 인간의 발전을 이룰 것을 요구하고 있다. 본래 씨족 사회를 둘러싼 원시 가무〔樂〕를 완전하고, 자각적인 인성의 발전과 서로 연관시킨 것은 바로 공자의 미학관 가운데 극히 심오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Ⅳ. 결 론
공자는 인으로써 예를 해석하여, 예란 인간의 본성과 직결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반드시 이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씨족 혈연 관계를 기초로 하는 친자의 정이 바로 그가 말하는 인의 근본이며 이것이 인간 내재적인 점을 깨우치고 자각적인 행동을 할 수 있으면 사회는 화해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예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보았다. 공자는 심미와 예술이라는 사회 현상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있고도 보편적인 의의와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견해를 제기한 사람이다. 공자의 인학은 그의 미학과 연결되어 있다. 성어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악의 학습을 통해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인간이 만들어짐을 주장한다. 또한 유어예는 예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인간의 자유 감각을 습득하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며 이것이 인학의 최고 경지라는 예술관을 피력한다(Song, 2015).
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창의성, 가능성과 다양성, 상징성을 발현시킬 뿐만 아니라 인간의 선험적인 감성으로부터 얻어지는 외재적인 산물이다.
동아시아 가운데 공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일·중 세 나라 예술관의 공통점은 음양오행, 노장 사상, 유가와 불교 등이다. 이로부터 비롯된 공통의 철학이 각국 특유의 예술관을 형성시키며 가꾸어 왔다. 우리 미술사와 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저술하여 우리 미술을 최초로 학문의 위치에 올려놓은 한국 미술사학의 선구자인 고유섭(1905~1944)은 한국미의 특질을 간소미와 소박미, 다시 말해 자연스러움의 미학이라고 보았다. 음양오행의 조화와 균형, 노장 사상의 무위자연, 유불교의 특성 등이 잘 나타난 결과이다(Lee, 2006).
일본의 민예·공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한·일·중 동양 3국 예술의 민족적 특징을 선·색·형태라는 조형의 3요소로 설명했다. 한국은 선이 아름답고, 일본은 색채가 밝으며, 중국은 형태미가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 예술의 선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고, 일본 예술의 색채미는 깔끔함을 추구하며, 중국 예술의 형태미는 완벽함을 보여주고 있다(Oh, 2005).
세 나라의 미의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그 근저에는 지속적이고 공통적으로 공자의 예술관이 부분적으로 존재한다. 그 흐름을 ‘도(道)’와 ‘심경(心境)’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설명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모든 삶과 행위는 대자연에 귀속되므로, 항상 자연에 순종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태도를 중시한다. 또 동양의 예술관은 심경 즉 정신의 예술로 설명되어지는 부분이 많다. 따라서 동양의 예술적 사상은 물질과 기술 만능의 가치관이 초래한 인간성 파괴와 상실, 경제개발에서 파생된 자연 훼손에 직면하게 된 현실에서 인간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서양의 예술적 전통은 사실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객관적 진실을 묘사하는 것이 강조되었다. 반면 동양의 예술적 전통은 의식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주관과 객관의 교류를 강조하였고, 자연에 대한 묘사 속에 자기의 의식이 스며들도록 하였다.
보에티우스(Boethius, 480~524)는 “하느님의 선과 미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하고 일반 사람의 마음은 모두 선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Kang, 2019)”는 철학사상을 피력하였다.
공자의 악과 예에 대한 예술관 연구는 무엇보다 공자가 직접 얘기한 내용인 『논어』에 남아있는 사료가 학자마다 시대마다 그 뜻을 조금씩 달리해서 해석되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사료의 의미를 지금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공자의 뜻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무리가 있을 수가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확정할 수 없고, 그에 대한 인과관계도 분명하지 않으며 또 그 역사적 의미 또한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따라서 공자의 예술관 연구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시대 현상이 반영되어지므로 부득이 합리적 추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논리적인 추정을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부분은 의문점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남아 있는 사료라고 하더라도 그 사료적 가치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 2천5백여 년 이상이란 긴 시간이 지나며 학자나 시대적 이념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되기도 하고 또는 옮겨 쓰는 과정에서 글자를 잘못 쓰거나 때로는 생략되기도 한다. 또 대부분 그 시기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수합되고 정리된 것이다. 일차 사료가 아니라 후학이나 어떤 사상가의 철학과 서사 방식에 따라 재편집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후속 연구가 진행되어 공자의 악과 예에 대한 충실한 해석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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