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어보의 수산생태학적 의미와 가치의 분석 연구
Abstract
In this study, the fisheries ecological significance and value of Jasan-Eobo were explored and analyzed. This analysis was carried out in the light of the modern scientific theories, taking into account the level of knowledge at the time of the writing of the Jasan-Eobo more than 200 years ago. Jasan-Eobo argued that Pacific herring has different abundance cycles in different sea areas, suggesting the possibility of the existence of the sub-populations of Pacific herring. Based on the fact that the number of vertebrae was different in each sea area, Jasan-Eobo presented a method of identifying the sub-populations for the first time in the world, which is the first step in the assessment of fishery resources. Written for the purpose of helping professional scholars to study the laws of natural science, Jasan-Eobo took a scientific attitude that emphasized the direct experience of observing the inside of a fish through dissection. In addition, Jasan-Eobo not only provided information on marine organisms closely related to fish species in coastal ecosystems required for the Ecosystem-Based Fisheries Management (EBFM) approach, which has been actively developed since the 21st century, but also proposed the Indigenous, Traditional owner and Local community Knowledge (ITLK) method, which utilizes the knowledge and experience of fishermen to carry out the EBFM approach. Therefore, this study aims to introduce the important value of Jasan-Eobo in terms of marine fisheries ecology to the world.
Keywords:
Jasan-Eobo, Sub-populations, Number of vertebrae, Ecosystem-based fisheries management (EBFM), Indigenous, Traditional owner and local community knowledge (ITLK)Ⅰ. 서 론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조선 후기 학자인 정약전이 1801년(순조 원년)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때 전라도 흑산도에 유배되어 1814년까지 생활하면서 이 지역의 해양생물을 연구하여 편찬한 서적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원본에 정약용의 제자 이청이 보완 작업을 거친 것이다(Kim, 2016). 자산어보는 서문을 포함하여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흑산도 근해의 각종 어류와 해양 동식물 총 238종의 명칭과 형태, 습성, 분포 등 생물학적 특징과 이용 방법을 설명하였다.
자산어보는 한국의 박물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이에 따라 여러 각도에서 연구가 수행되어 다양한 연구 결과가 서적이나 논문으로 출간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자산어보에 대한 평가가 부정확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예로 Kim(2016)은 ‘동아시아 최초의 수산생물 전문서’라는 평가(NIFS, 2013)에 대해 중국과 일본의 어보들을 검토해 보면 재고해야 할 부분이 다소 있다고 하였다. 이외에도 자산어보의 연구 결과에 대해 여전히 많은 의문과 논란이 있다.
현재까지 자산어보와 관련된 접근은 인문학적 연구 논문(Kim, 2014, 2016)과 서적(Lee, 2002; Kim, 2008; Kim, 2010; Lee, 2016; Jung, 2016; Kwon and Kim, 2021)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반해 자연과학적 측면에서의 접근은 보고서나 서적 형태(NIFS, 2013; Suh et al., 2015)로 출간이 되었으나 매우 미흡한 수준이다. 따라서 자산어보의 가치를 재조명해 보는 차원에서 수산생태학적인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것 또한 필요하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어업유산시스템을 보존하기 위해 세계중요농어업시스템(GIAHS)을 지정하여 운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어업유산의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뜻을 되새겨서 자산어보의 수산생태학적인 평가와 기록어업유산으로서의 학술 가치를 살펴보았다.
이 연구는 자산어보를 역사적인 측면에서 해석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순수한 수산생태학적인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수산생태학이라는 학문적 측면에서 자산어보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현대 학문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본 연구의 주된 목적이다.
Ⅱ. 연구 방법
본 연구에서는 자산어보 저술 당시 조선의 학문 수준에 대해 문헌을 통해 검토하였으며, 최신 과학이론에 비추어 자산어보의 수산생태학적 설명과 논리를 비교·분석하였다.
이 논문은 생물종의 분류가 목적이 아니므로 생물 분류체계의 계-문-강-목-과-속-종 가운데 자산어보에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된 계-문-강-목 수준까지만 비교하였다. 자산어보의 생물 명칭에 관한 번역본은 최근 출판본인 Lee(2016)의 ‘신역 자산어보’(번역서 저본은 고려대 소장본)와 Jung(2016)의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번역서 저본은 서강대 소장본)를 기준으로 하여 Jung(1977)의 ‘자산어보, 흑산도 물고기들’(4개의 사본 정리본)과 ‘자산어보 부경대 필사본’(Jung, 1814)을 참고하였다.
현대 해양생물의 분류체계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국가 해양수산생물종 목록집(MABIK, 2023)’을 기준으로 하였으며, Zhang(2010)의 ‘해양수산자원생태학’을 참고하였다. 현대 수산생태학 이론과 수산생태학적인 해석은 Zhang(2010)의 ‘해양수산자원생태학’ 및 Zhang(2014)의 ‘수산자원의 평가와 관리’를 기준으로 하였다.
Ⅲ. 연구 결과
1. 자산어보에 제시된 현대과학적 연구 방식
자산어보 저술 당시인 19세기 초기 조선의 학문 수준은 유학인 성리학이 주요 지식체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나 이 시기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서학의 도전을 받던 때이다. 서구에서는 현대과학의 발달로 16세기 말부터 현미경이 발명되어 미세 플랑크톤을 포함한 미생물이 관찰되고 있었다. 1687년에는 뉴턴의 역학을 통해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태동하여 관찰을 통해 사물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1758년부터는 Linne의 생물 분류학과 이명법(binomial nomenclature)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전은 규장각에 근무하면서 물리학의 기초개념과 ‘기기도설(奇器圖說)’을 공부하였으며, ‘기하원론(幾何原論)’도 익힐 기회가 있었다(Suh et al., 2015). 자산어보의 서문에는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연구(理則 또는 理財; 필사본만 존재하는데 10권의 필사본 확인 결과 5:5로 표현되어 이 연구에서는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理則’으로 해석)하는 전문학자(數家)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저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자산어보는 해양생물의 해부뿐만 아니라 관찰과 측정을 통해 얻은 수리생태학적 자료들을 수량적 단위인 연, 월, 중량, 길이(자, 치), 개수(다리, 마디) 등 수치로 제시하였다. 따라서 자산어보는 실제 관찰을 통해 얻은 자료들을 제공하여 후대의 전문학자들이 자연과학적인 법칙 연구(理則)에 활용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시도한 서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자산어보는 동아시아 박물학의 중요한 전통인 ‘시경’의 다식(多識)의 차원을 넘어 수산자원생물을 통한 치병(治病), 어업생산과 어업관리를 통한 이용(利用)과 이칙(理則)의 목적으로 어업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였다.
2. 자산어보의 수산생태학적 의미
수산생태학 연구의 첫 단계는 연구대상으로 하는 생물을 인식하는 분류 작업이다. 자산어보는 3권에서 흑산도 연안의 각종 어류와 해양 동식물을 설명하였다. 첫 권은 <Table 1>과 같이 비늘이 있는 인류(鱗類, scaled-skin group)에 대해 20아류(sub-group) 84종(species), 둘째 권은 비늘이 없는 무린류(無鱗類, scaleless-skin group)와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개류(介類, shell-skin group)로, 비늘이 없는 무린류는 19아류 43종 그리고 껍질이 딱딱한 개류는 12아류 66종을 기록했다. 셋째 권은 물고기가 아닌 해양생물인 잡류(雜類, miscellaneous group)를 해충(海蟲, 바다 벌레), 해금(海禽, 바닷새), 해수(海獸, 바다짐승), 해조/해초(海藻/海草, 조류와 바다풀)로 4개 아류(sub-group)로 분류하여 45종에 대해 수록하였다. 자산어보는 총 55아류 238종의 생물을 다루었는데, 이들 중에 농어, 준치 등은 아류 수준에 해당하지만 단일 종이며 이 단일 종에 수록된 12종의 유사종은 현대 분류로는 아종(sub-species)에 해당한다.
자산어보는 어보이지만 흑산도 연안 생태계의 어류뿐 아니라 어업대상 해양생물(인류, 무린류, 개류)과 이들과 연관성을 가지는 기타 생물(잡류)을 모두 다루고 있다. 자산어보는 해양생물 238종에 대해 어업대상 동물은 비늘, 껍데기를 기준으로 해서 1차로 인류, 무린류, 개류 등 3류로, 비어업대상 생물은 잡류로 해서 4류로 나누고, 2차로는 비슷한 유형들을 모아 55아류로 재분류하였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명나라 말기 이시진이 본초강목(本草綱目)의 동물분류에서 어류와 개류를 분리하면서, 어류는 다시 비늘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류와 무린류로 나눈 체계를 따른 것이다.
<Table 1>은 자산어보의 분류체계와 현대 생물 분류체계를 비교한 표이다. 먼저 현대 분류체계에서 가장 상위 범주인 계(Kingdom) 수준에서 보면 동물계인 산호충을 식물계인 해초아류에 포함시켰다. 또한 해초아류는 원생생물계(해조류)와 식물계(해초류)의 2개의 계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잡류는 3개의 계로 이루어졌다.
다음 상위 범주인 문(Phylum) 수준에서는 척삭동물과 연체동물, 절지동물 등이 구분되지 않았다. 인류는 모든 종들이 척삭동물로만 구성되었고, 무린류와 개류는 척삭동물과 연체동물, 극피동물, 자포동물, 절지동물 등 5개의 문으로 구성되었다. 척삭동물의 포유류에 속하는 고래와 상괭이, 극피동물의 해삼, 연체동물의 오징어와 문어를 한데 묶어서 무린류에 포함시켰다. 개류는 연체동물과 극피동물, 자포동물, 절지동물에 척삭동물의 파충류에 속하는 바다거북도 합쳐서 개류로 묶었다. 흥미로운 것은 개류의 굴·따개비·말미잘아류(굴)는 연체동물문 5종, 절지동물문 2종, 자포동물문 1종 등 8종이 3개의 다른 문에 속하는 생물들로 구성되었다.
다음 범주인 강(Class) 수준에서 보면 훨씬 복잡하다. 인류는 대부분인 19아강이 조기강이며 상어아강 하나만 연골어강으로 2개의 강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연골어강에 속하는 가오리아류는 무린류에도 포함되어 있다. 무린류와 개류, 잡류는 각각 5개 문으로 구성되어 아주 다양한 강을 포함하고 있다. 인어(人魚)의 경우 척삭동물문에 속하는 동물로 보이나 확실한 분류학적 정보가 없어서 강 수준에서의 분류는 불가능하였다. 개류의 굴·따개비·말미잘아류(굴)는 연체동물문(5종), 절지동물문(2종), 자포동물문(1종) 등 3개의 문으로 구성되었다.
자산어보에서 비늘이 없는 무린류로 분류된 꽁치·갈치류(공치)의 학공치에는 실제로 비늘이 존재하며(NFRDI, 2004), 가오리류와 장어류도 비늘이 있으나 퇴화된 상태이다. 또한 상어는 자산어보에서 ‘태생’이라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상어는 어종별로 ‘난생·난태생·태생’의 3가지 생식 유형이 있다. 그렇지만, 자산어보는 어류뿐 아니라 흑산도 연안 수산생태계의 연관 생물종들도 포함하였다.
수산자원의 연구는 크게 3개 분야로 나누는데 자원생물의 자연사적 연구 분야, 개체군 역학적 연구 분야, 생태계 환경을 고려하는 수산해양학적 연구 분야가 있다 <Table 2(A)>. Hjort (1914)에 의해 유영성 어류자원의 경우 가입량이 큰 변동을 한다고 밝힌 이후 기후 및 지구물리·화학·생물학적 해양 요인들과 해양생태계 내 자원생물의 관계에 관한 수산해양학적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 활성화되고 있는 연구 분야이다.
자산어보에서는 해양생태계에 주기적인 체제 전환(regime shift)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자산어보의 내용 중 “청어가 건륭(乾隆) 경오년(庚午年, 1760년) 후 10여 년 동안은 풍어였으나 중도에서 뜸해졌다가 그 후 가경(嘉慶) 임술년(壬戌年, 1802년)에 대풍어였으며, 을축년(乙丑年, 1805년) 후에는 쇠퇴하는 성쇠를 거듭했다”는 유영성 어류자원인 청어의 변동 특성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청어의 풍흉 주기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바로 생태계 환경을 고려하는 수산해양학적 연구 분야에 해당한다. 이 주장은 Hjort(1914)의 유영성 어류자원의 생산량 변동 주장보다 이미 한 세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제기된 것이다. 실제로 체제 전환에 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체제 전환의 정의를 포함한 개념을 수립하고,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체제 전환의 사례를 소개한 논문(Wooster and Zhang, 2004)이 발표되면서부터이다.
청어의 풍흉이 변동하는 매커니즘은 대기순환지수(Atmospheric Circulation Index, ACI)의 변동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Klyashtorin, 1998)가 있다. 그러나 유영성 어류자원의 생산량 변동 원인에 대해서는 남획, 생활사 초기 환경조건,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의 학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Zhang, 2010).
수산자원의 관리를 위해 수행되는 자원평가는 <Table 2(B)>와 같이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어떠한 자원을 평가할 것인지 단위 자원을 식별하여야 한다. 다음은 그 자원에 대한 자원생태학적 특성과 자원량을 추정하고, 자원 역학적 모델을 통해 자원의 상태를 평가한다. 마지막으로는 평가된 결과를 토대로 자원관리 방안을 제시한다.
자산어보는 주요 어종들에 대해 자원평가 4단계 과정 가운데 첫 단계인 단위 자원의 식별과 두 번째 단계인 자원생태학적 특성과 자원량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Table 3>은 자산어보에 수록된 청어와 고등어에 대한 자원생태학적 특성치와 자원량 정보를 보여 준다.
첫 단계인 단위 자원의 식별에서, 단위 자원(또는 계군)은 ‘일정한 지리적인 분포구역 내에서 개체 상호 간의 임의교배를 통해서 동일한 유전자 풀(gene pool)을 공유함으로써 일정한 유전자 조성을 가지며, 동일한 생태학적 특성과 독자적인 수량 변동의 양상을 보이는 집단’이라 정의한다(Zhang, 2010). 단위 자원을 식별하는 방법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체의 계수형질이나 계량형질을 사용하는 형태학적 방법이다. 두 번째로, 산란기나 분포 등 생태학적으로 계군을 식별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유전자 조성을 이용한 생화학적 및 유전학적 방법이다(Grant and Zhang, 1983).
계군의 식별을 위한 형태학적 방법 가운데 하나는 어류의 척추골 수를 비교하여 분석하는 방법이다. <Table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군 식별을 위한 형태학적 방법으로 자산어보는 청어의 척추골 수를 제공하였다. 영국의 어류학자 Günther(1862)는 학술적 측면에서 동일 어종에 속하는 어류의 척추골 수는 위도에 따라 증가한다는 논문을 처음으로 발표했다. Jordan and Evermann(1896)은 어류의 척추골 수가 위도에 따라 증가하는데 이는 어류의 초기 발달 단계 동안의 환경적 요인, 특히 온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척추골 수를 이용한 계군 식별에 관한 최초의 연구는 1959년에 발표된 ‘척추골 수에 기반한 대서양청어(Clupea harengus)의 계군 분리’ 논문(Gulland and Thompson, 1959)이다. 이 연구는 대서양청어의 다양한 계군을 식별하기 위해 척추골 수를 활용했으며, 척추골 수가 어업관리에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Günther의 1862년 연구 논문보다 50여 년 전인 1814년 출간된 자산어보에는 청어의 척추골 수가 동해, 즉 영남산은 74마디, 서해, 즉 호남산은 53마디로 해역별로 다르다고 설명하였다. 즉, 두 개의 청어 계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자산어보에서 청어의 척추골 수의 정확성 여부는 차후 검증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동일 어종의 척추골 수가 해역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청어가 해역별로 풍흉 주기가 다르다는 사실로 계군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해역별로 척추골 수가 다르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수산자원 평가의 첫 단계인 동일 어종의 단위 자원인 계군을 식별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제시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또한 자산어보는 계군 식별을 위한 생태학적 방법으로서 청어와 고등어의 해역별 풍흉 주기가 다르다는 사실도 언급하였으며 해역별 어기를 설명하여 회유 시기와 경로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두 번째 단계인 자원생태학적 특성과 자원량에 대해서도 자산어보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였다. 먼저, 성숙·산란 특성에서는 청어의 성숙시기와 산란기를 설명하였다. 연령·성장 특성에서는 청어의 시기별 체장 자료를 제시하였으며, 선택성·가입 특성에서는 청어와 고등어에 대한 어구가입체장과 해역별 어구가입시기 정보를 각각 제공하였다. 자원량의 정보로 청어와 고등어의 연대별 자원의 성쇠와 풍흉 시기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자산어보는 수산자원의 상태를 평가하는 3단계와 자원관리 방안을 제시하는 4단계까지는 제시하지 못했다.
최근 수산과학의 화두는 어업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생태계 역학과 이를 응용하는 생태계기반 어업자원 평가 및 관리에 관한 연구이다. 생태계기반 어업자원 평가 및 관리에 관한 연구의 목표는 [Fig. 1]에서와 같이 자연과학적인 연구로서는 ‘자원의 지속가능성’과 ‘생물다양성’, ‘서식처 환경’을 보전하는 것이며, 사회경제적 연구로서는 ‘사회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이다.
자산어보의 저술 목적은 치병(治病), 이용(利用), 이칙(理則)으로 전문학자(數家)들이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자산어보의 내용을 ‘치병’으로 활용하는 것은 당시 권위 있는 의술서인 동의보감(東醫寶鑑)의 내용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태계기반 어업자원 평가 및 관리의 ‘사회경제적 혜택’의 목표에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이용’의 목적은 어업의 생산과 어업의 합리적 관리를 통해 경제적 혜택을 얻는 것으로 경제적 혜택에 부합한다. 한편 ‘이칙(理則)’의 목적은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수립하는 데 후세의 전문학자들이 활용하는 것으로 ‘자원생물의 지속가능성’유지 목표에 부합한다. 이를 위해 자산어보는 앞에서 설명한 수산자원의 1, 2단계 평가를 위해 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였다.
자산어보는 어보이지만 어류뿐 아니라 어업대상 해양생물(인류, 무린류, 개류)과 이들과 연관성을 가지는 기타 생물(잡류)을 포함시킴으로써 ‘생물다양성’ 연구를 위한 과학적 자료를 이미 제공하였다. ‘서식처 환경’에 관한 정보도 일부 제공되기는 했으나 다른 목표에 비하면 다소 미흡했다. 따라서 최근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생태계기반 어업자원 평가 및 관리에 관한 연구의 목표는 200여 년전 저술된 자산어보의 저술 목표 및 내용에 부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생태계기반 어업관리에서 최근에 적극 권장되고 있는 ITLK (Indigenous, Traditional owner and Local community Knowledge) 개념(Evans et al., 2024)을 “창대의 말에 의하면...”과 같이 이미 19세기 초에 어업인의 지식과 경험을 적극 활용하였다.
Ⅳ. 결 론
올해(2024년)로 저작 210주 년을 맞는 자산어보의 학술 가치를 보면 무엇보다도 척추골 수로 수산자원의 계군을 분석하는 방식을 세계 최초로 제시하였다는 점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와 관련되어 최초의 연구로 알려진 영국의 어류학자 Günther의 1862년 논문보다 이미 반세기 이전인 1814년 자산어보가 저술되었다는 사실이다. 수산자원의 계군 식별은 수산자원 평가 4단계의 과정 중 첫 단계로서 아주 중요한 연구 항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척추골 수를 사용한 꽁치의 계군 식별 연구가 1971년 수행되어 논문으로 처음 발표된 바 있다(Kim, 1971). 또한 청어의 풍흉 주기를 제시하였는데 이 사실은 1614년에 저술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이미 언급되었지만(Park, 1975), 해양생태계의 체제 변화(regime shift)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현대의 첨단 연구 이슈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더불어, 자산어보에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학계에서 활발히 연구하고 있는 생태계기반 어업관리(Ecosystem-Based Fisheries Management, EBFM) 방식을 예견하였다. 생태계기반 어업관리에 관한 연구의 목표인 자원의 지속가능성과 생물다양성 유지, 서식처 환경 보전과 사회경제적 혜택을 추구하는 것이 자산어보의 저술 목표 및 내용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생태계기반 어업관리에 필수적인 사항으로 권고하고 있는 ITLK 개념을 자산어보의 저술에 이미 적극 활용하는 혜안을 보였다.
자산어보는 자연과학적인 법칙을 연구(理則)하는 전문학자(數家)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는 저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에도 성리학에서는 리(理)를 추구하는 방법으로 주역(周易)을 사용했다고 한다(Zhang, 2019). 그렇지만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통해 자연과학적 연구 방식을 한국 최초로 실행했다.
자산어보의 분류체계는 현대 분류체계와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류분류학에서 중요한 골화(ossification)를 기준으로 연골·경골어류로 분류하지 않고 비늘의 유무로 분류하였다. 이는 이전의 중국의 분류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시의 기술과 관습을 고려해 본다면, 해부보다는 외관으로 구분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무린류로 분류한 어종들 가운데에는 비늘이 있는 어종들이 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 Linne의 Systema Naturae가 1735년 처음 출간되어 1758년에 10판이 나온 이후 현대 생물 분류학과 이명법이 이미 시작되었다. 자산어보를 저술할 당시까지 정약전뿐 아니라 중국의 학자들도 유럽에서는 사용되고 있던 Linne의 서양식 분류법을 인지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서양의 선진국들도 생물 분류법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 있었으므로 이를 지금의 수준에서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대분류가 비늘의 유무이므로 현대 분류체계에 대응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산어보의 생물 분류체계에는 문제가 있었으나 당시 학문 수준에서는 한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산어보는 이시진의 본초강목보다 더 높은 수준의 업적이고 서구보다도 선진화된 분류법을 제시했지만(Lee, 2016), 그렇다고 매우 과학적인 분류법으로 보기는 어렵다(Suh et al., 2015). 본초강목의 부-류-종 분류체계를 바탕으로 더욱 세분화했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Kim, 2016). 따라서 Kim(2016)이 제시한 바와 같이 동아시아 최초 해양생물 전문서라는 평가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학술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자산어보의 분류 방식에 대해 일부 아동도서에서 자산어보가 Linne와 비슷한 분류법에 따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류했다거나, 현대생물학과 비슷한 종의 분류 방식에 따라 기술한 책이라고 소개하는 것은 생물 분류학의 입문자들에게 오해를 초래할 위험성도 있다.
1803년에 펴낸 한국 최초의 어보인 김려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는 진해 앞바다의 기이한 물고기를 대상으로 했으며, 자산어보 이후에 저술된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는 물고기 이름을 문헌으로 고증하는 데 주력하였다. 이에 반해 자산어보는 정약전 자신이 관찰한 해양생물 전체를 기록으로 남긴 해양생물 백과전서와 같은 성격을 지녔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Kim, 2016). 따라서 자산어보는 당시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시대 흐름에서 선구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업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자산어보에서 수산자원의 명칭을 한문으로만 표기했다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당시의 한문으로 된 정식 명칭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현지 주민들이 직접 사용하는 이름도 한문으로만 표기하고 우리말도 한문으로 음차해서 표기하였다. 그러나 우해이어보는 표현에 있어서 한글도 사용하였다(Kim, 2008). 자산어보에서 훈민정음 표기를 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나, 어보의 독자층을 어부나 현지 주민이 아닌 전문학자들을 대상으로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산어보에 그림까지 넣어서 도감을 만들었으면 세계적인 수산과학 저서로 인정될 수 있는 아쉬움도 있지만, 당시의 사정을 고려해 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산어보는 수산자원의 연구 3분야 <Table 2(A)> 중 수산자원의 수리생태학적 연구 분야를 제외하고 자원생물의 자연사적 연구 분야와 생태계 환경을 고려하는 수산해양학적 연구 분야 등 2분야의 연구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수산자원 평가 4단계 <Table 2(B)>의 과정에 있어서는 단위 자원의 정의 그리고 자원생태학적 특성치와 자원량 추정 등 두 개의 단계는 어느 정도 다루었으나 자원상태의 평가와 자원관리 방안 등 나머지 두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자산어보는 당시의 ‘해양수산자원생태학 각론’으로서 손색이 없는 저서로 볼 수 있다.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전은 국립과천과학관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과학자(30번째)로 헌정되어 있다. 자산어보는 2020년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과학기술사 3-2호)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2009년 7월에 등재되었으며, 국보 제319-1호로 등재되었다. Jung (2016)의 주장대로 자산어보의 원본 정본화 작업이 속히 이루어져서 그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나아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에서 현대 해양생물 분류체계에 대해 세심하게 검토해 주신 국립부경대학교 김진구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References
-
Evans K, Schmidt JO, Addo KA, Bebianno MJ, Campbell D, Fan J, Gonzalez-Quiros R, Mohammed EY, Shojaei M, Smolyanitsky V, Zhang CI(2024). Delivering scientific evidence for global policy and management to ensure ocean sustainability. Sustainability Science.
[https://doi.org/10.1007/s11625-024-01579-2]
- Grant WS and Zhang CI(1983). Electrophoretic examination of Korean herring (Clupea harengus pallasi). Bulletin of Fisheries Research and Development Agency, 31, 49~60.
- Gulland JA and Thompson AJ(1959). The estimation of growth and mortality in commercial fish populations. Fishery Bulletin, 187~214.
- Günther A(1862). Catalogue of the fishes of the British Museum, Vol. 4. Order of the trustees, London, U.K, 65.
- Hjort J(1914). Fluctuations in the great fisheries of Northern Europe. Rapports et Proces-verbaux des Réunions. Conseil International pour l'Éxploration de la Mer, 20, 1~228.
-
Jordan DS and Evermann BW(1896). The fishes of North and Middle America: a descriptive catalogue of the species of fish-like vertebrates found in the waters of North America, north of the Isthmus of Panama. Bulletin (United States National Museum), 47, 1896.
[https://doi.org/10.5962/bhl.title.46755]
- Jung MH(2016). Korea's first encyclopedia of marine biology Jasan-Eobo. Booksea, Gyeonggi-do, Korea, 1~296.
- Jung MG(1977). Jasan-Eobo: Fishes around Heuksando. Jisik-Sanup Publications Co., Gyeonggi-do, Korea, 1~226.
- Jung YJ(1814). Jasan-Eobo. Pukyong National University manuscript(1958, Transcribed by Kim BH: A copy collected by Professor Kim SG, Seoul National University). 1~64.
- Kim HS(2008). A study of Woohaei-Eobo and Jasan-Eobo, Hankookmunhwasa Publishing Co., Seoul, Korea, 1~250.
- Kim KJ(1971). Studies on the fishery biology of the Pacific saury.Cololabis saira of the East coast of Korea 1. Numbers of vertebrae, gill rakers and relative growth. The Korean Society of Fisheries and Aquatic Science, 4(1), 7~16.
- Kim MK(2010). Sea/Fishes/Knowledge: Natural history of fishes in the early modern East Asia. Korean Studies Information Co., Gyeonggi-do, Korea, 1~415.
-
Kim MK(2014). History of knowledge on marine fishes in East Asia: Focused on the pre-Eobo periods. Journal of Ming-Qing Historical Studies, 41, 107~150.
[https://doi.org/10.31329/JMHS.2014.04.41.107]
- Kim MK(2016). The books of fishes and the formation of ichthyological knowledge in the early modern East Asia. History & the Boundaries, 99, 185~250.
-
Klyashtorin LB(1998). Long-term climate change and main commercial fish production in the Atlantic and Pacific. Fisheries Research, 37, 115~125.
[https://doi.org/10.1016/S0165-7836(98)00131-3]
- Kwon KS and Kim KN(2021). Jasan-Eobo. The story, Seoul, Korea, 1~356.
- Lee DS(2016). New version Jasan-Eobo. Mokgeuntong, Seoul, Korea, 1~424.
- Lee TW(2002). Finding Hyunsan-Eobo 2. Chungaram media, Seoul, Korea, 1~416.
- MABIK(National Marine Biodiversity Institute of Korea)(2023). 2023 National list of marine species. marine microorganism. Namuprint Publishing Co., Seoul, Korea, 1~1239.
- NFRDI(National Fisheries Research and Development Institute)(2004). Commercial fishes of the coastal and offshore waters in Korea: Second Edition. Hangeul Publishing Co., Busan, Korea, 82.
- NIFS(National Institute of Fisheries Science)(2013). Jasan-Eobo and the 21 century. NIFS, Busan, Korea, 1~130.
- Park GB(1975). Korean Fisheries History. Jungeumsa, Seoul, Korea, 1~262.
- Suh YS, Youn SH, Chung MH, Kim JK, Ryu JH and Lee SJ(2015). The latest Jasan-Eobo. Academy Publishing Co., Seoul, Korea, 1~230.
-
Wooster WS and Zhang CI(2004). Regime shift in the North Pacific: early indications of the 1976-1977 event. Progress in Oceanography, 60, 183~200.
[https://doi.org/10.1016/j.pocean.2004.02.005]
- Zhang CI(2010). Marine fisheries resource ecology. Pukyong National University Press, Busan, Korea, 1~561.
- Zhang CI(2014). Assessment and management of fisheries resources, Blue-and-Note, Seoul, Korea, 1~399.
- Zhang HI(2019). Hwe-Ik Zhang’s lecture in natural philosophy, Chungrim Publishing Co., Seoul, Korea, 1~610.